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오펙(OPEC·석유수출국기구) 본부. 3월 3일 촬영. AP 연합뉴스
주요 석유수출국들의 협의체인 ‘오펙 플러스’가 원유 증산에 합의했다. 그러나 국제 원유값은 미국의 재고량 감소 소식에 1% 남짓 올랐다.
오펙(OPEC·석유수출국기구)과 러시아 등 비오펙 석유수출국들의 협의체인 오펙 플러스는 2일(현지시각) 정례회의를 열어 7~8월에 하루 원유를 64만8천배럴씩 더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이번에 합의한 증산량은 애초 예상된 43만2천배럴보다 50% 남짓 늘어난 것이다. 오펙 플러스 산유국 석유장관들은 이날 성명에서 “원유와 정유 제품 모두에서 안정적이고 균형 있는 시장의 중요성이 강조됐다”고 말했다. 다음 정례회의는 30일 열린다.
미국과 유럽 등은 그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등으로 국제유가가 고공 행진하자 원유의 추가 증산을 압박했으나, 오펙 플러스를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번 회의에서도 산유국들이 기존 방침을 고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증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우디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2018년 살해된 저명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을 둘러싸고 냉랭한 관계를 이어오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관계가 개선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 통신은 1일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말 스페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중동으로 가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리는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사우디의 실권자 빈살만 왕세자가 회담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날 합의로 증산 여력이 있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이 원유 추가 생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등은 오펙 플러스의 추가증산 합의를 환영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오펙 플러스의 중요한 결정을 환영한다”며 “사우디가 주도하는 산유국들이 이번 합의를 위해 역할을 한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유가는 이날 합의에도 오히려 올랐다. 국제 원유가격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 선물은 이날 배럴당 117.61달러로 1.1% 상승했고, 미국의 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1.4% 오른 배럴당 116.87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미국의 원유 재고량이 지난주 수요가 공급을 지속적으로 초과함에 따라 510만배럴 줄어든 상황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감소는 애초 예상됐던 130만배럴보다 훨씬 많이 줄어든 것이다.
미국의 석유 관련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앤드류 리포는 “오펙 플러스가 시장의 예상보다 조금 더 많은 증산에 합의했지만, 이미 기존 쿼터에 하루 200만배럴 이상 적은 양을 생산해왔기 때문에 실제 시장에 추가 공급되는 물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캐나다 투자은행 ‘티디 증권’(TD Securities)의 바트 멜렉은 “시장에 오펙 플러스 회원국들이 추가증산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다”며 여름 성수기에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펙 플러스는 2020년 코로나19의 유행과 함께 원유 수요가 줄자 하루 58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했다가, 지난해 7월 감산규모를 줄여 매달 하루 40만배럴씩 증산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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