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화정책에 키를 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AP 연합뉴스
10월 미국 소비자 물가지수가 31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석유값 상승 대처를 주문하는 등 물가오름세의 추세와 강도가 미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10일 10월 소비자 물가지수가 전년 동기에 비해 6.2%로 올랐다고 발표했다. 1990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물가상승세이다. 앞선 9월 5.4%에 비해 0.8%포인트 다시 상승한 것이다. 노동통계국은 이 결과에 대해 경제의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한” 상승이 있었다고 표현했다.
에너지와 식료품 분야가 물가오름세를 견인했다. 에너지 분야는 9월에 비해 4.8% 올랐다. 가솔린 지수는 6.1%나 올랐다. 연율로 계산하면 각각 30%와 50%가 오른 것이다. 에너지와 식료를 제외한 물가오름세는 10월에 0.6%를 기록했지만, 전달 0.2%를 크게 웃돌았다. 식료 가격은 한달 사이에 0.9%가 올랐다. 특히, 가정용 식료는 1%가 상승했다. 에너지와 식료를 제외한 10월 물가오름세의 연율은 4.6%로 1991년 이후 최고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을 물가오름세의 주요 동인으로 지적하며, 그 추세를 뒤집은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어 “국가경제위원회에 에너지 비용을 더 줄이는 수단을 강구하라고 지시했고, 연방통상위원회에는 에너지 분야에서 어떠한 시장 조작이나 부당한 가격인상을 퇴치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롬 파월 의장 등 연방준비제도(Fed) 고위 인사들은 현재의 물가오름세는 국제 공급망과 노동시장 병목 현상 때문이라며, 이번 현상은 일시적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연준의 경제분석가들은 높은 물가오름세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나, 내년 2~3분기에는 물가상승은 잦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인 미국의 소비자 물가오름세가 31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세계의 생산 공장인 중국의 생산자물가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기 보다 13.5% 올랐다고 10일 밝혔다. 1996년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25년만에 최고치이다. 이는 9월 상승률 10.7%을 다시 경신한 것이다.
일각에선 물가오름세가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가오름세의 선도적 지표인 해운운임이 11월 들어서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해운운임 지수인 발틱 운임지수는 지난 10월7일 5650으로 정점을 찍은 뒤 11월10일 현재 2860으로 거의 절반 가까이 폭락했다. <시엔비시>(CNBC)는 “발틱운임지수 하락은 일부 경제분야의 과열 추세가 뒤집히는 신호일 수 있다”며 “이는 아마 최악은 지나갔다는 지표”라고 전문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올해의 11~12월에는 10월보다는 완화된 물가오름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의 물가상승세는 공급망 병목 현상을 몰고 온 물류난이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해운운임 하락은 이런 물류난이 곧 해결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가오름세 역시 곧 진정될 수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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