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휘몰아치는 천연가스 가격 급등 여파에 유럽 최빈국인 몰도바가 유럽연합(EU) 국가들에 긴급 천연가스 공급 요청을 하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러시아는 위기에 빠진 유럽을 상대로 에너지를 ‘지정학적 무기’로 활용하며 ‘노르트스트림2’의 조기 가동을 압박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12일 익명의 소식통 2명을 인용해 몰도바가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가스프롬과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이 지난달 끝나며 가스 공급이 줄자, 유럽연합 회원국인 루마니아를 통해 유럽연합 국가들로부터 천연가스 공급을 요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있는 몰도바는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인해 지난달 평소 구입액의 약 3분의 1밖에 사들이지 못했다.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달 1000㎥당 550달러에서 이달 790달러로 뛰었다. 이는 지난해 몰도바가 지불한 평균 가격의 무려 5배에 이른다. 인구 260만명의 소국인 몰도바(1인당 국내총생산 4551달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안드레이 스프누 부총리는 11일 최근 가스 가격이 “정당하지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며 러시아 다른 회사나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가스를 공급받는 대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옛 소련 소속 국가였던 몰도바에선 지난해 친서방 성향의 마이아 산두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석유화학 정보 제공 기업 아이시아이에스(ICIS)의 아우라 사바두스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가스프롬에 (몰도바에 공급하는) 가스의 양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몰도바에는 매우 중요한 양”이라며 “그들(가스프롬)의 행동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몰도바에 친유럽 성향 대통령과 정부가 있고, 러시아는 이 상황(천연가스 가격 급등)을 몰도바를 압박하는 데 기꺼이 이용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전체적으로도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지정학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일 “시장에 공급을 확대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가스프롬과 논의해볼 것”이라고 말한 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했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에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출렁일 만큼 러시아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셈이다. 유럽이 사는 천연가스 가운데 가스프롬의 비율은 무려 35%에 이른다.
이를 보여주듯 러시아는 유럽의 위기에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 각국과 맺은 장기 공급 계약은 이행하고 있으나 새롭게 공급을 확대하려는 적극적 노력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9월 “러시아가 유럽 시장의 안정적 공급자라는 점을 보여줄 기회”라며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확대를 촉구하는 이례적 성명을 발표했다.
현재 상황을 활용해 러시아가 얻어내려는 것은 지난 9월 완공된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의 조기 사용승인인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가스프롬이 새로운 시스템을 사용하면 더 싸게 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며 발트해를 거쳐 서유럽으로 직접 연결되는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 유럽 각국 사용 승인을 채근했다. 노르트스트림2는 지난 9월 완공됐으나 사용승인 절차가 남아 있어, 아직 가동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은 이 가스관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의존이 더 심해진다며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러시아는 나아가 유럽이 현재 상황을 해결하려면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블라디미르 치조프 유럽연합 주재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는 유럽 가스 가격 급등에 관여하지 않는다면서도 유럽이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를 “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를 바꾸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최근 전했다. 그는 “적이라는 단어를 파트너로 바꾸면 문제는 더 쉽게 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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