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 있는 주유소에 “기름 없음”이라고 쓴 표지판이 서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유럽과 아시아를 동시에 덮친 전세계적인 에너지 가격 상승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딛고 기지개를 켜려는 세계경제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번 에너지 위기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세계가 앞다퉈 내놓은 친환경·탈탄소 정책의 탓이라는 ‘그린플레이션’(친환경 정책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유럽에선 애초 계획에서 일부 후퇴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하지만 이번 위기의 원인은 ‘각국의 정치적 역학 관계’이기 때문에 더 과감한 친환경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관련기사 8면
최근 급등세를 보이는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1일 메가와트시(㎿h)당 93.63유로를 기록했다. 전날보다는 다소 하락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7배나 올랐다. 이 여파로 9월 들어 영국에선 가스·전력 소매업자들이 줄도산했고, 비료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공장 조업이 중지됐다. 가정용 전기료도 7~8월부터 급등해 프랑스 정부가 9월 580만가구에 100유로(약 13만7천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밝히는 등 각국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들은 “각국이 탈탄소 정책을 추진하며 발전소용 연료를 온난화 가스 배출이 적은 천연가스로 바꾼 것”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늘려달라는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가격 급등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세계의 공장’을 자임해온 중국에서도 지난달 하순 장쑤성 등 일부 지역에서 전기공급이 끊기며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치열한 전략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의식해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탓이다. 이후 국가가 정한 탄소 배출 목표에 따라 지방정부들이 에너지 소비 규제를 강화한데다, 발전용 석탄 공급에 차질이 생기며 중국 내 전력 수급에 구멍이 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미국 애플·테슬라 등에 부품을 공급하는 대만 업체들의 조업이 중단되며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에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달 30일 중국에 “생산 공급망의 안정을 위해 에너지와 전력 공급을 보장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중국 국가통계국 통계를 보면, 올 1~8월 전력 소비량은 전년보다 14% 늘어났지만, 석탄 생산은 4% 증가에 그쳤다. 수입으로 빈틈을 메워야 하지만, 주요 석탄 수출국인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관계가 악화돼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
전세계가 에너지 수급 불안에 시달리며, ‘그린플레이션’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유럽에선 관련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유럽의회는 교통수단과 난방에까지 탄소세를 부과하는 지난 7월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는 절충안을 내놨다.
이번 사태는 에너지 수입 비중이 큰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자재 가격 정보를 보면 1일 현재 전력용 연료탄은 전년 대비 125.5%(1t당 206.3달러), 액화천연가스의 한국 수입가는 68.4%(1t당 534.6달러) 올랐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데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구조라 원자재 의존도와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아 타격이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기섭 한광덕 선임기자,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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