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에 빠진 중국 거대 부동산개발 회사 에버그랜드(헝다그룹).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2위의 거대 부동산개발 회사가 3000억달러(약 350조8000억원)가 넘는 천문학적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에 몰리면서 중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위기의 배경에는 ‘공동부유론’을 내세워 부동산 시장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내놓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판단’이 자리하고 있어 향후 중국 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된다.
미국 신용평가 회사 피치는 8일 중국 2위 부동산개발 회사 에버그랜드(헝다그룹)의 신용평가등급을 CCC+에서 CC로 2단계 강등하며, 이 회사의 신용위기가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피치는 에버그랜드가 “파산이 가능해 보인다”고 밝혔다. 전날 또 다른 신용평가 회사 무디스도 에버그랜드의 신용등급을 낮추고 “파산이 가능하거나, 매우 근접했다”고 평했다. 에버그랜드의 부채는 현재 무려 1조9700억위안(3040억9700만달러·356조원)에 이른다.
이틀에 걸쳐 신용등급이 떨어진 여파로 에버그랜드의 주가는 9일 홍콩 증시가 열리자마자 10%나 급락했다. 에버그랜드의 주식 가치는 올 들어 75%나 폭락해 지난 2009년 ‘상장가’를 밑도는 3.5홍콩달러 내외로 거래되고 있다. 선전 증시는 이 회사의 채권 값이 이날 오전 20%나 급락하자 거래정지 명령을 내렸다.
에버그랜드의 파산 위기는 부채가 많은 다른 중국 부동산개발 회사로 전염되고 있다. 크레디스위스 및 시티뱅크는 판타지아 등 과다한 부채를 지고 있는 다른 중국 부동산개발 회사들의 채권을 인수하지 않고 있다고 <블룸버그 뉴스>가 보도했다. 온라인마켓 거래 플랫폼인 아이지(IG)는 에버그랜드가 “전염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정보 회사인 레드(REDD)는 에버그랜드가 21일이 만기인 2개 은행으로부터의 대출에 대한 이자 상환을 중지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21일이 에버그랜드의 파산 여부가 결정되는 ‘중대 기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부동산 업계가 위기에 빠진 것은 경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내 부동산 거품이 커지고 온라인 플랫폼 회사들이 거대화되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성장에 대한 경고를 보내왔다. 거대 플랫폼 회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부동산 자금줄을 죄었다. 모두가 함께 잘살자는 이른바 ‘공동부유론’이다. 그 여파로 중국 부동산 시장의 신규주택 가격은 올해 1분기에 정점을 찍은 이후 20%나 폭락했고, 토지 가격도 급격히 하락 중이다.
에버그랜드는 1997년 쉬자인 회장이 광둥성 광저우에서 창업한 부동산개발 회사로, 환경을 중시하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서비스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창업 3년 만에 광둥성 1600여 부동산개발 업체 가운데 10위권으로 성장한 뒤 2009년 홍콩 증시에 상장하며 7억2200만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후 부동산 거품이 커지며 쉬 회장은 한때 알리바바의 마윈, 텅쉰의 마화텅과 더불어 중국 3대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지나친 차입 경영과 전기차 등 문어발식 사세 확장으로 인한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이 커졌다.
에버그랜드가 21일 상환일을 어길 경우 중국 당국이 정말 파산을 용인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가디언>은 경제 분석가들을 인용해 이 회사의 파산은 중국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