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27일 러시아의 모스크바 국제비즈니스센터 인근에 설치된 이동식 천막 실험실을 조심스럽게 나서고 있다. 이날 러시아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8만7147명으로, 중국을 넘어 세계 9위 수준을 기록했다.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거리집회가 사실상 원천봉쇄되자, 러시아 반정부 시위대가 다양한 온라인 집회 방법을 고안해 ‘반푸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정부 시위대의 온라인 결집력이 커지면서 철옹성 같던 크레믈도 긴장하는 모양새다.
러시아의 여러 반정부 단체들이 개헌에 반대하는 대규모 온라인 시위를 28일 개최한다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 벨레>가 27일 보도했다. 러시아에서는 최대 2036년까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개헌이 추진되고 있다. ‘삶을 위하여’란 이름으로 열리는 온라인 집회에서 시위대는 개헌 반대와 함께 코로나19 대책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지난 20일, 러시아 시민들이 러시아판 구글맵인 ‘얀덱스맵’ 예카테린부르크 지역에 자발적으로 위치 표시를 하며 반정부 메시지를 올리고 있는 모습. 트위터 갈무리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는 이날 온라인 반정부 시위에선 대표적 반정부 인사들이 나와 연설을 할 예정이다. 또 일반 참석자들도 개헌 반대 등 메시지가 담긴 펼침막을 들고 온라인 집회에 동참할 계획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시위대가 러시아판 구글맵인 ‘얀덱스맵’을 활용해 도시 곳곳에서 ‘가상 집회’를 구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얀덱스맵에 있는 ‘사용자 참여형 교통정보 올리기’ 기능을 시위에 활용한 것이다. 얀덱스맵 관공서 주변에 자신의 위치를 표시한 뒤 교통정보 대신 시위 구호를 올리는 방식이다. 한 예로, 최근 한 얀덱스맵 사용자는 모스크바 크레믈궁 주변에 위치 표시를 한 뒤 “다시 1917(볼셰비키 혁명)은 가능하다” “푸틴 사임”을 올리기도 했다.
온라인상의 ‘관공서 포위 시위’는 지난 20일 러시아 남서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처음 시작돼, 모스크바는 물론 볼가강 상류에 위치한 공업도시 니즈니노브고로드와 시베리아 지역의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등 러시아 곳곳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독재적인 푸틴 정부에 항거해온 반정부 단체들은 이런 온라인 시위를 계기로, 그간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대도시에 국한됐던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전국으로 번지길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 중부 서시베리아의 튜멘에서 개헌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니키타 키시코는 “이런 시위를 통해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정부 단체 활동가들은 27일 러시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8만7천명)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9위까지 치솟는 등 위기가 확산되면서 ‘열혈’ 푸틴 지지자들도 푸틴에게서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자택격리 장기화와 유가 하락 여파로 러시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4~6%나 감소할 것이란 전망 속에, 정부의 재난 지원 부족을 질타하는 여론들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크레믈 쪽에선 “사람들이 토로하는 어려움을 크게 신경쓰고 있다”면서도 “얀덱스 시위 메시지의 의미를 (실제보다) 과장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학자 알렉산드르 키네프는 <도이체 벨레> 인터뷰에서 “격리 조처가 해제되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불만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세계로 번지게 될 것이란 걸 그들도 알고 있다”며 크레믈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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