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그리스 북동부의 터키 쪽 국경지대에서 유럽의 관문인 그리스로 넘어가려는 난민들이 철조망에 가로막힌 채 “도와달라”고 문구를 내보이며 절박한 호소를 하고 있다. 파자르쿨레/AFP 연합뉴스
시리아 북부 도시 이들리브의 주민 압둘라 모하메드는 세살배기 딸 살와에게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웃자고 가르쳤다. 어린 딸은 폭음이 들릴 때마다 ‘까르르’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뜨렸다. 애꿎은 민간인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공습의 공포를 잊기 위한 슬픈 게임이었다. (
▶<알자지라> 동영상 보기=Drowning out the sound of bombs with laughter in Syria's Idlib)
러시아의 지원을 업은 시리아 정부군이 최근 몇달 새 반군 장악 지역에 대한 탈환 공세를 강화하면서 모하메드 가족은 고향집을 떠나 터키 국경 쪽으로 피신한 난민 신세가 됐다. 지난주 터키 정부는 이들에게 자국 내에 새 삶터를 제공했다. 이들 가족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다. 지난해 12월 이후 시리아 북부에서 새로 생겨난 난민만 90만명이 넘는다. 대다수는 국경을 넘어 터키로 피난하거나 유럽행을 원하지만, 이들을 환영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한때 난민에 대해 비교적 포용적 태도를 취했던 유럽연합(EU)이 최근 재발한 난민 사태에 단단히 빗장을 걸어 잠그고 나섰다. 3일 유럽연합 집행부는 난민의 역내 유입을 막기 위해 터키와 접경한 유럽의 관문인 그리스의 난민 대응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고 <아에프페>(AFP) 등 외신들이 전했다. 최근 터키가 더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할 수 없다며 유럽 쪽 국경을 개방한 데 따른 대응 조처다.
3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맨 오른쪽)이 다비드 사솔리 유럽의회 의장(앞쪽 가운데),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맨 왼쪽) 등과 함께 헬기를 타고 그리스-터키 국경지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스/EPA 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등 유럽연합 집행부는 이날 헬기를 타고 그리스-터키 국경 상황을 살펴본 뒤 “그리스는 유럽의 방패”라며 “(난민 대응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그리스의 난민 대응 자금으로 7억유로(약 9280억원)를 지원하기로 하고, 이 금액의 절반은 즉시 제공하기로 했다. 또 유럽국경·해안경비청(Frontex·프론텍스) 소속 신속대응팀 100명을 그리스-터키 국경에 증원하고, 해안순찰선과 헬기, 차량 등도 지원할 방침이다. 현재 그리스 국경에는 500명 이상의 프론텍스 경비요원이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그리스 외곽 경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그리스 국경은 유럽의 국경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유럽의 단합을 시험하는 이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라며, 난민 봉쇄를 유럽 공동의 과제로 표현했다. 2015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유럽연합의 난민 수용 분담을 주도했던 것과 정반대 분위기다.
그리스 정부에 따르면 지난 주말 사이에만도 최소 2만4000여명이 터키에서 그리스로 들어오려다 막혀 국경지대에서 발이 묶였다. 현재 터키는 시리아 난민 370만명을 수용해, 과포화 상태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터키가 난민 송환 협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2016년 유럽연합은 터키가 자국에 체류 중인 외국 난민이 유럽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조건으로 약30억유로를 지원하는 협약을 맺은 바 있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4~5일 터키를 방문해 시리아 위기와 난민 문제에 대한 고위급 회담을 할 예정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