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영국 윈저궁에서 2019년 연례 성탄 메시지를 사전 녹화하고 있다. 영국 왕실이 24일 공개 배포한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전세계 정치인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더욱 과감한 ‘공동 행동’ 합의에 실패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 여왕이 ‘기후 행동’을 성탄 메시지로 전하고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적극적 통화정책 목표를 잇따라 표방하고 있어 주목된다.
엘리자베스 2세(93) 영국 여왕은 25일 잉글랜드 중부 노퍽의 성 마리아 막달레나교회에서 열린 왕실 성탄예배에서 “오늘날의 도전은 우리 세대가 겪은 것과 다르다. 하지만 요즘 환경·기후 보호와 같은 이슈로 신세대들이 예전과 비슷한 목적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감명받고 있다"고 말했다. 여왕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드물다”는 말로 기후파업 행동이 낙관적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어 “200년 전 고조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태어난 이래 남편 필립 공작과 나는 (지난 5월) 8번째 증손자가 태어나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며 세대 지속을 위한 기후 행동에 희망을 암시하기도 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적극 개입하자는 중앙은행 역할론도 커지고 확산되고 있다. 마크 카니 영국 영란은행 총재 등은 “홍수 등 자연재해에 따른 물적 피해로 보험계약이나 투자 자산 가치가 훼손되면서 금융안정이 위협받고, 기후변화 정책이 급변하면서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은 가치가 급락하는 ‘이행 위험’도 있다”며 금융안정 관점에서 기후변화 위험에 정책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란은행의 주도로 한국은행을 포함한 54개 중앙은행과 감독당국이 참여하고 있는 녹색금융네트워크(NGFS·2017년 창설)는 “금융시스템이 기후변화 위험으로부터 복원력을 갖게 할 책무가 있다”며 기후 관련 금융리스크 관리감독 방안을 연구중이다. 다만 미 연방준비제도는 불참하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틈이 날때마다 “기후변화 위험을 국제통화기금의 감시 업무에 반영할 수 있다”며 각국 중앙은행에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아예 중앙은행 자산매입프로그램에 ‘그린 양적통화완화(QE)’를 도입하자고 주창한다. 막대한 규모의 외환보유고 운용 지침에서 친환경 기업 채권(그린본드)을 적극 매입하고,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기업 채권인 ‘브라운 자산’은 징벌적으로 매도·배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세계 67개 중앙은행 중 63%가 향후 외환보유액 운용목표에 ‘그린 양적통화완화’를 반영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중앙은행이 시중 금융기관을 감독할 때 기후 관련 위험을 평가·반영하는 방식의 금융규제도 검토되고 있다.
물론 그린본드 발행시장의 제한적 규모(국채·회사채 포함 올해 전세계 신규발행잔액 2125억달러)라는 현실적인 제약도 있고, 통화정책 중립성 논란도 제기된다. 영란은행 등은 중앙은행 책무인 경제성장 및 금융안정에 기후변화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통화정책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충분히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 총재와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등은 “기후변화 이슈에 통화정책이 개입하면 정치적 부담도 크고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도 우려된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