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운데)가 20일 상원 연설에서 오성운동과의 연정 파기를 선언한 극우 정당 동맹 소속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비판하며 총리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반난민’ 정서에 기대 지지율을 끌어올린 극우 정당이 던진 승부수에 이탈리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주세페 콘테 총리가 20일 사퇴를 선언하면서 극우정당 ‘동맹’과 반체제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의 불안한 동거 체제로 운영돼 온 이탈리아 연립정부가 14개월 만에 붕괴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21일부터 곧장 각 정당 대표들과 새 연립정부 구성 여부 등 정치적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대화에 돌입했지만, 이탈리아 의회 의석이 워낙 쪼개져 있는데다 정당 간 견해 차도 커 새 연정 구성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기 총선 가능성까지 불거지며 이탈리아 정국이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콘테 총리는 지난 20일 상원 연설에서 “현재 겪고 있는 연정의 위기로 이탈리아 정부 활동이 손상을 입게 됐다”며 “현 정부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고 밝혔다. 지난 8일 극우정당 ‘동맹’ 소속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오성운동과의 연정 파기를 공식화하고 조기 총선을 요구함에 따라 도저히 정국 운영을 할 수 없게 됐다며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연정 구성 두 정당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중립적 위치를 지켜왔던 그는 이날 1시간 넘게 지속된 상원 연설에서 살비니 부총리를 면전에 두고 이례적으로 “자신의 당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 나라를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적 불안정성의 위기 속에 몰아넣었다”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반난민 정서를 부추겨 지난 5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동맹에 대한 지지율이 1위로 상승하자, 살비니 부총리가 스스로 총리가 되기 위해 연정 파기 선언을 하며 정치·경제적 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콘테 총리에 이어 연단에 오른 살비니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심판이 두렵지 않다”고 자신감을 내비치며 조기 총선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이제 관심은, 살비니의 이런 도박이 성공할 것이냐에 집중되고 있다. 일단, 전권을 넘겨받은 마타렐라 대통령은 21일부터 이틀 간 각 당 대표들을 순차적으로 만나며 동맹과 오성운동의 연정 복구는 물론, 새 연정 구성 등 다양한 정국 수습 방안 논의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이탈리아 정치권에선 서로 앙숙처럼 지내왔던 오성운동과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이 ‘반 실비니’를 기치로 연정 협상에 돌입했다는 얘기는 물론, 오성운동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당의 연정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오성운동과 민주당은 최근 살비니의 내각 불신임안 상정 때 함께 손잡고 이를 부결시킨 바 있고, 오성운동과 전진이탈리아는 지난 7월 독일 정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을 차기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으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힘을 합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살비니는 정치적 입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살비니 기치로 뭉친다고 해도 당 내부 반발에 부딪칠 가능성이 있어, 결국 조기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총선이 치러진다면 시기는 10월 말이나 11월 초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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