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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유럽 법원 “직장내 히잡 금지는 차별 아니다”

등록 2017-03-15 18:07수정 2017-03-15 21:51

유럽사법재판소, “고용주의 중립 요구는 적법”
앰네스티 “종교적 신념에 차별 합법화” 비판
인권단체 “법적 판단보다 EU 정치 의식” 비판
무슬림 종교적 의무 제약땐 ‘사회적 고립’ 우려도
히잡을 쓴 세계 여러나라의 무슬림 여성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미국, 이란,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 위키피디아
히잡을 쓴 세계 여러나라의 무슬림 여성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미국, 이란,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 위키피디아
유럽 최고법원이 ‘직장내 히잡착용 금지’는 적법하다고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유럽연합사법재판소(ECJ)는 14일 “기업이 내부적으로 ‘특정한 정치, 신념, 종교적 상징의 복장 착용을 금지한다’는 사규가 있을 경우, 그것이 곧바로 ‘차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판결을 내놨다고 영국 <비비시>(BBC)와 아랍방송 <알자지라>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히잡 착용을 금지한 사규에 불복한 피고용자를 해고하는 것이 차별금지법 위반은 아니라는 뜻이다. 재판부는 이날 성명에서 “공공이나 민간 부문을 가리지 않고 고용주가 고객들에게 중립적인 이미지를 보이려 하는 것은 적법하며, 노동자가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곳에서는 특히 그렇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벨기에에서 히잡 착용을 이유로 해고된 무슬림 여성이 제소한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이다. 지난 2006년 벨기에의 보안업체 G4S의 안내데스크 여직원은 업무 시간에 히잡을 벗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해고한 회사를 유럽연합의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후 10년간 법적 공방과 논란이 이어진 끝에, 지난해 5월 벨기에 법원은 유럽사법재판소에 법규 해석을 의뢰했다.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이 히잡 착용을 둘러싼 논란에 구체적 결정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은 유럽연합 전체에 적용되는 법규들에 대한 회원국들의 사법적 판단에 구속력을 갖는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지난 7일에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알레포를 탈출한 난민 가족 5명이 2016년 10월 레바논 주재 벨기에 대사관에 신청한 임시 비자 발급을 거부한 벨기에 이민국의 결정을 지지하는 판결을 하기도 했다. 당시 판결도 법원 최고자문관의 ‘비자 발급’ 권고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을 낳았다. ▶관련기사=EU 법원 “시리아 난민 비자 거부 옳다”…유럽 문 굳게 닫히나

지난 4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 상가에 가톨릭교의 기도용 성물인 묵주들이 걸린 뒤로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을 씌운 마네킹이 전시돼 있다. 헤이그/AP 연합뉴스
지난 4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 상가에 가톨릭교의 기도용 성물인 묵주들이 걸린 뒤로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을 씌운 마네킹이 전시돼 있다. 헤이그/AP 연합뉴스
이슬람교는 성인 여성이 가족이 아닌 외부인을 만날 경우 히잡 착용을 종교적 의무로 규정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새 유럽과 미국의 반이슬람 정서가 부쩍 커지면서, 유럽 일부 국가들이 엄격히 적용하는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 금지’는 그렇잖아도 사회·경제적 약자인 무슬림 여성 이주자들이 설 땅을 갈수록 좁히고 있다. 이번 판결이 유럽 내 무슬림의 사회적 고립을 더욱 부추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권 보호의 보루인 법원이 책임을 외면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이유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존 달휘센 유럽·중앙아시아 국장인은 “오늘 판결은 실망스럽다. 고용주들에게 종교적 신념에 따른 차별의 길을 열어놨다”며 “정체성과 외모가 정치적 배경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 더 편견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유럽에서 반이민·반유럽연합·반이슬람을 내세운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득세하는 현실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개혁센터의 카미노 모르테라 마르티네스 연구원은 <뉴욕 타임스>에 “최근 들어 유럽 법원이 유럽연합의 균열을 의식해 법률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풍향에 갈수록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이날 사설에서 “유럽연합 사법재판소가 고약한 결정들을 각국 법원으로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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