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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EU 법원 “시리아 난민 비자 거부 옳다”…유럽 문 굳게 닫히나

등록 2017-03-08 14:47수정 2017-03-08 14:55

유럽사법재판소, 벨기에 ‘비자 거부’ 지지
자문관 의견과 정반대 ‘이례적 판결’ 지적
“EU 회원국 재량권”…유엔난민협약과 충돌
합법적 난민 막고 해상 밀입국 부추길 우려
스페인에 본부를 둔 민간 난민구조단체가 2015년 10월 유럽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조난당한 지중해 해상 난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프로악티바오픈암스 누리집 갈무리
스페인에 본부를 둔 민간 난민구조단체가 2015년 10월 유럽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조난당한 지중해 해상 난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프로악티바오픈암스 누리집 갈무리
유럽연합사법재판소(ECJ)가 시리아 난민 가족의 비자 신청을 거부한 벨기에 정부의 결정을 지지하고 나섰다. 법원이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결정을 인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판결로 받아들여진다.

유럽사법재판소는 7일(현지시각) 시리아 알레포 출신의 난민 가족 5명이 2016년 10월 레바논 주재 벨기에 대사관에 신청한 임시 비자 발급을 거부한 벨기에 이민당국의 결정이 옳다고 판결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보도했다. 이번 판결은 특히 사법재판소 자문관이 벨기에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며 이들 난민가족에 대한 비자 발급을 권고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유럽연합과 회원국의 이해가 걸린 법리적 판단과 국제법이 정한 인도주의 원칙이 충돌하는 셈이다. ▶참조=EU사법재판소의 공식 보도자료(영문)

앞서 지난달 7일 유럽사법재판소 최고자문관 멩고지지는 “비자 거부가 난민 신청자들을 고문이나 비인도적 처우에 빠뜨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 경우 회원국들은 인도주의에 바탕해 비자를 발급해야 한다”는 공식 권고를 내놓은 바 있다.

부부와 자녀 등 모두 5명의 시리아 난민 가족은 2016년 10월 시리아 내전의 최대 격전지 알레포를 탈출해 레바논 주재 벨기에 대사관에 90일짜리 비자 발급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당시 이들은 가족 중 1명이 무장세력에 납치돼 폭행과 고문을 당한 끝에 몸값을 주고 풀려났다고 진술했다. 또 자신들은 기독교 신도들로, 시리아로 돌아갈 경우 이슬람 국단주의 세력에게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유엔난민협약)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으며 “국적국 밖에 있으면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원하지 않는 자, 또는 종전의 상주국에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제 1조 2항)를 난민으로 규정하고 국제적 보호를 보장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고향을 등진 어린이들이 지난 4일 시리아 북부 만비즈 인근의 한 마을에 있는 임시 피난처에 서있다. 6년째 지속된 시리아 내전으로 지금까지 약 30만명이 숨지고 1100만명이 넘는 국외 난민과 국내 이재민이 발생했다. 카루피야/AFP 연합뉴스
시리아 내전을 피해 고향을 등진 어린이들이 지난 4일 시리아 북부 만비즈 인근의 한 마을에 있는 임시 피난처에 서있다. 6년째 지속된 시리아 내전으로 지금까지 약 30만명이 숨지고 1100만명이 넘는 국외 난민과 국내 이재민이 발생했다. 카루피야/AFP 연합뉴스
그러나 유럽연합사법재판소는 이번 판결에서 “유럽연합 법규는 회원국들에게 피난처를 찾아 영토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인도주의적 비자를 발급하도록 요구하지는 않으며, 각국은 자국 법률에 근거해 비자를 발급하는 재량권을 갖는다”고 판시했다. 유럽연합 법규가 난민에 대한 회원국의 비자 발급에까지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유럽연합 역외 국가의 시민들이 난민에 대한 국제적 보호를 이유로 유럽연합의 특정국가를 선택해 비자를 신청하는 것을 허용할 경우 이는 유럽연합이 난민 보호 책임 국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시스템을 손상시킬 것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론도 나온다. 네덜란드 라부드대학 이민법센터의 카롤루스 그루터스 선임연구원은 <비비시>에 “이번 판결은 (난민의 처지에 대한) 인도주의적 근거를 고려해야 한다는 자문관의 권고와는 정반대라는 점에서 매우 기이하고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자문관의 의견은 난민들이 리비아나 터키에서 보트를 타고 밀입국을 시도하지 않고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대사관을 찾음으로서 밀입국 브로커들을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이번 판결은 합법적인 난민 신청의 통로를 막음으로써 위험천만한 해상 밀입국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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