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1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내 땅은 당신의 땅”, “이주자들 말고 무관심을 금지하라” 등의 구호를 쓴 손팻말을 들고 난민 수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르셀로나/EP 연합뉴스
유럽의 난민 위기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반난민 정책이 난민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주말새 유럽에서 난민에 대한 극명하게 엇갈리는 태도가 동시에 터져나와 대조를 보였다.
다음달 총선을 앞둔 네덜란드에선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53) 대표가 18일 선거 유세에서 모로코 이주민들을 “쓰레기들”이라고 부르며 외국인 혐오 정서를 자극했다. 빌더르스는 이날 남서부 도시 스페이케니서에서 “네덜란드 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모로코인 쓰레기들이 많다”며 “여러분이 네덜란드를 다시 네덜란드인의 조국으로 되찾고 싶다면 (자유당에) 투표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모든 이민자가 쓰레기는 아니라고 본다”며 발언 수위를 조절했지만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스페이케니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산업도시이자 극우 자유당의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다. 이날 빌더르스의 거리 유세에선 경찰과 보안 요원들의 그를 에워싸고 삼엄한 밀착 경호를 펼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8일 선거 유세에서 이민자들을 쓰레기라고 지칭한 네덜란드 극우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운데)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환한 표정으로 지지자들과 만나고 있다. 그 뒤로 한 시민이 “난민 환영 ”이라고 적은 종이를 들어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스페이케니서/AP 연합뉴스
빌더르스는 앞서 2014년 3월 지방 선거 유세에서 “모코로인이 네덜란드에서 더 많은 게 좋은가, 더 적은 게 좋은가”라고 물어 “더 적게, 더 적게”라는 호응을 끌어낸 뒤 “우리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이 발언으로 인종차별과 증오선동 혐의로 기소됐으나 인종차별만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네덜란드 자유당은 유권자들의 반이민 정서를 깊숙이 파고들면서, 현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주류 정당들이 ‘강경한 반이슬람 시각’을 지닌 빌더르스와 손잡는 것을 꺼리고 있어, 자유당이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해도 연정을 구성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같은 날 스페인 제2도시인 카탈루냐주 바르셀로나에선 16만명(주최쪽 주장 30만명)의 시민이 중앙정부에 난민 수용을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행진을 벌였다. 2015년 독일이 주도한 유럽연합 회원국의 난민 수용 할당 합의에서 스페인은 1만6000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었다.
이날 시위는 ‘우리 집은 당신들의 집’이라는 그룹이 주도했으며, 지난해 지중해를 건너다 조난사고 등으로 숨진 5000여명의 난민을 기리는 뜻으로 지중해 해변의 한 곳에서 행진을 마쳤다. 가족·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한 시민 하신트 코메예스(62)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우리는 최소한의 (인간) 존엄을 요구한다”며 “카탈루냐는 난민을 환영할 모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 의회의 메르세 코네사 의원은 “스페인이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유럽연합집행위원회에 난민 수용 쿼터제를 이행하지 않는 회원국들에 대한 제재를 촉구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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