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 이민·난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민이 지난 4일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독일 시사 주간 <슈피겔> 최신호의 표지에 그려진 이미지로 팻말을 만들어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덴버/AP 연합뉴스
“고통스럽더라도 중대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독일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도널드 트럼프)과 그의 정부에 반대하는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이 최신호 사설에서 트럼프를 로마 제국의 폭군 네로 황제에 비유하며, 유럽을 비롯한 세계가 ‘위험한 대통령’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한 손에는 피묻은 흉기를, 다른 손에는 자유의 여신상을 참수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치켜든 섬뜩한 이미지를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라는 문구와 함께 표지 그림으로 실어 논란을 빚은 2017년 제6호에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언론들에서는 ‘미국 일방주의’에 가까운 트럼피즘에 대한 우려와 경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독일 정론지가 미국의 대통령을 겨냥해 직설적 비난과 경고를 쏟아내며 ‘반 트럼프 동맹’까지 언급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독일은 나치즘의 광기가 휩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반세기 넘게 국제사회의 전면에 나서거나 민감한 발언을 꺼려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등장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가 구축해온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슈피겔>의 클라우스 보이머 편집장은 “미국 대통령은 병적인 거짓말쟁이이자 인종주의자이며, 위로부터의 쿠데타를 시도하고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길 원한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가 최근 자신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이견을 보인 법무장관 대행을 즉각 해임하고 “나약한 배신자”라고 비난한 것을 두고는 “‘배신자’는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파괴자였던 네로가 즐겨쓴 단어이자 폭군들의 사고방식”이라고 일갈했다.
<슈피겔>은 사설에서 반이민, 반환경, 반다원화 등 ‘트럼피즘’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었다. 사설은 “오늘날 세계는 한 나라가 문제점을 풀기엔 너무 복잡해졌으며, 유엔, 세계무역기구(WTO),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나토(NATO), 유럽연합(EU) 등은 그런 이유로 창설됐다”며 “트럼프 정부가 20세기의 진정한 진전으로 여겨지는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쓸어 없애려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오늘날 디지털화와 세계화, 사회분열과 급속한 생활 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두려움을 국가주의 및 외국인 혐오와 버무려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설은 끝으로 “경제·군사·문화적으로 초강대국인 미국이 ‘희생양’ 행세를 하며 나머지 세계에 굴욕적 양보를 강요하는 건 터무니없다”며 “지금이 민주주의, 자유, 서방과의 동맹 등 중요한 것들을 위해 일어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6일 플로리다주 탬파에 있는 미 중부군사령부를 방문해 “미국은 나토를 강력히 지지한다”며 “모든 나토 회원국들이 동맹을 위해 완전하고 적절한 재정 기여를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5일에는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를 갖고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 약속을 어떻게 독려할지와 당면한 안보 위기 등을 논의했으며, 오는 5월 유럽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의에도 참석하기로 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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