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이 미국 대선 다음날인 9일 내각회의를 열기 위해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유럽이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트럼프 당선자가 유럽과의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무시한 친러시아 정책과 노골적인 반이민 노선, 핵 비확산에 대한 낮은 관심 등 ‘미국 우선주의’를 공언하면서, 대서양 양안과 중동의 외교·안보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오는 1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 외무장관회의를 열어 트럼프 당선이 유럽-미국 관계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영국 <가디언> 등이 10일 보도했다. 유럽연합의 한 고위 외교관은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하기 전에 각 회원국이 외교정책에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회의를 제안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주간 <슈피겔>과 한 인터뷰에서 “많은 나라가 트럼프 정부의 외교 독트린이나 그의 발언에서 명백하고 일관된 입장을 파악하려 하고 있지만, 성공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도 여러차례 트럼프 당선자의 외교정책이 어떻게 될지 의견을 나눴으나 그조차도 통찰력을 제공하지 못했다”며 향후 미-유럽 관계의 불확실성에 대한 답답함을 털어놨다.
유럽 정부들의 불안감과 달리 유럽 극우세력은 트럼프의 당선에 기세등등한 분위기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10일 일간 <빌트> 기고에서 “선동적 포퓰리즘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서구의 다른 곳에서도 정치적 담론이 위험한 상태”라고 경고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은 무산됐지만 대서양 건너 프랑스에선 (여성 정치인인) 마린 르펜의 꿈이 부풀었다”고 전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가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9일(현지시각) 파리 인근 낭테르에 있는 당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는 성명을 발표하던 중 누군가가 손을 뻗어 사진 촬영을 막으려 하고 있다. 낭테르/EPA 연합뉴스
신문은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정당 국민전선 대표인 르펜이 당선될 경우 유럽에선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에 버금가는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우파 싱크탱크 퐁다폴의 도미니크 레니에 대표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에 힘입어 르펜의 당선 가능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르펜은 내년 대선에서 1차 당선자 없이 결선투표에 진출할 경우 25% 이상을 득표할 것으로 예측됐다.
독일에서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난민 수용’ 정책이 거센 역풍을 맞으면서 ‘독일을 위한 대안’ 등 극우정당이 득세하고 있다. 그러나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다른 이들의 의견과 다양한 사고방식에 열린 태도라면 선동적 포퓰리즘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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