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기본소득 부결의 이면
정부 “세금 인상·복지 축소 초래” 반대
찬성쪽 “논의 활성화만으로도 기뻐”
정부 “세금 인상·복지 축소 초래” 반대
찬성쪽 “논의 활성화만으로도 기뻐”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 헌법 개정안이 5일(현지시각)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것은 비용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 도입에 반대하는 스위스 정치권도 이를 부각시켰다. 정치학자인 클로드 롱샹은 스위스 관영매체 <스위스인포>에 “기본소득 도입 운동을 벌였던 이들은 설득력 있는 자금조달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민투표를 추진한 쪽은 모든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 미성년자에게 750스위스프랑을 매달 지급하는 방안을 구상했는데, 스위스 정부는 이 경우 매년 2080억스위스프랑(약 249조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알랭 베르세 내무장관은 “무조건적 기본소득 지급은 세금 증가와 공공지출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스위스 경제와 사회복지 시스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본소득 도입 운동을 벌이는 이들은 현재 기존 복지혜택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 실제 늘어나는 비용은 연간 250억스위스프랑(약 30조원)에 그치며, 이는 증세나 정부지출 내역 조정을 통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스위스 일반가계의 전체 소득구조에서 사회보장제도 관련 수입이 약 20% 가량 된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도하는 단체의 주장은 “지금과 같은 액수의 돈을 받더라도, 현재의 ‘사회보장 제도’는 시혜적이고, ‘기본소득’은 시민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 사이에서 증세와 경제에 미칠 악영향 등에 대한 우려가 컸고, 정치권도 이를 강조했다. 또 좌파 계열에서는 기본소득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한 저임금 구조 고착화 등을 우려하면서 좀더 정밀한 형태의 기본소득 제도를 고민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우려 등으로 기본소득 도입안은 국민투표에 앞서 실시된 하원 표결에서 찬성 19, 반대 157, 기권 16표로 부결됐고, 상원에서는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 1명만 지지했을 뿐이다.
이때문에 기본소득 도입 운동을 벌인 이들도 부결을 예상했다. 다만 이를 통해 기본소득에 대해 스위스 사회가 생각하게끔 만들려는 게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인 세르지오 로시는 “5명 가운데 1명이 무조건적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했다. 아주 성공적”이라고 평가했고, 운동 지도자 중 한명인 랄프 쿤디그는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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