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레스보스 섬 해안가에 막 도착한 시리아 난민 가족이 감격에 겨워 서로 끌어 안고 있다. 전해리 사진가
장관들 연석회의 구체합의 실패
‘난민캠프’에 구금 뒤 추방안 요구
아프리카 등 역외 아웃소싱 검토도
헝가리는 국경 봉쇄·비상사태 선포
메르켈 “다음주 특별정상회의 열자”
‘난민캠프’에 구금 뒤 추방안 요구
아프리카 등 역외 아웃소싱 검토도
헝가리는 국경 봉쇄·비상사태 선포
메르켈 “다음주 특별정상회의 열자”
유럽에서 새 삶터를 찾으려는 난민들이 난민캠프에 수용되거나 추방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유럽연합 내무·법무장관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연석회의를 열었지만 ‘22개 회원국이 16만명의 난민을 분산 수용한다”는 데 “원칙적 합의”만 했을 뿐 구체적 합의에 실패했다고 <로이터> 등 외신들이 전했다. 9일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집행위원장이 제안한 ‘기존 4만명+추가 12만명 할당안’에 대한 이견을 끝내 좁히지 못했다. 유럽연합 장관들은 다음달 8일 다시 회의를 열 때까지 실무급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
디미트리스 아브라모풀로스 유럽연합 이주 담당 집행위원은 회의 뒤 “회원국 다수가 (난민 대책을) 진전시킬 준비가 돼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회원국들에게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모두가 자기 몫의 책임을 질 시간이다”고 호소했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일 뿐이었다.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 보수우파 정당들이 집권한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 의무수용’에 대한 완강한 반대를 고수했다. 헝가리는 15일 0시를 기점으로 새 이민법이 시행됨에 따라 난민 대량 유입에 따른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난민들이 입국하는 세르비아 쪽 국경에 가시철조망을 치고 국경경비대에 불법입국자 체포권을 부여했으며, 국제선 열차의 입국도 봉쇄했다고 <유로뉴스>가 전했다.
14일 유럽연합 회의는 ‘해결책’을 내놓기보다 ‘회피책’을 궁리하는 자리에 가까웠다. 각국의 장관들은 지중해를 건너오는 난민들이 몰리는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난민수용소를 설치해 당장 자발적인 귀환이 불가능한 ‘뜨내기 이주자’들을 구금했다가 추방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장관들은 더 나아가, 아프리카 등지에 난민 접수센터나 난민 수용캠프를 만들어 난민 수용 과정을 아웃소싱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장관들은 또 난민들을 유럽 바깥으로 돌려보낼 ‘안전국가’ 명단을 조만간 최종 확정하기로 합의했다. 심지어 영국의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은 “아프리카에 난민퇴거센터를 세울 필요도 있다. 그럼으로써, 보호가 필요한 난민 신청자들을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경제적 이주자들은 돌려보낼 수 있다”고 했다.
이날 회의가 유럽연합 난민정책의 급작스런 퇴행 조짐을 드러냈다는 우려도 나온다. 클로드 모레이스 유럽의회 시민자유·법무·내무 위원장은 “안전국가 같은 아이디어는 난민 비호권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디언>은 “이날 회의에선 난민들을 배제하고 책임을 제3국에 떠넘기거나 본국으로 송한하는 것을 겨냥한 ‘유럽 요새화 정책’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도 15일 “유럽연합 장관회의가 유럽의 이주·난민 위기에 대한 더욱 과감한 결정을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멜리사 플레밍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유럽연합이 유엔난민기구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유럽연합이 향후 몇 주 안에 더 나은 해법을 마련할 때까지는 혼란 속에서 살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 장관회의가 성과없이 끝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는 15일 유럽연합 특별정상회의를 다음 주에 열어 난민 위기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메르켈 총리는 “우리는 유럽연합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독일은 이날 유럽연합이 각국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난민 분산수용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은 이날 <체트데에프>(ZDF) 방송에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국가들에) 압력을 행사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으로부터 구조기금을 너무 많이 받는 나라들이 종종 있다”며 동유럽 일부 국가들을 겨냥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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