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그리스·체코와는
경제협력 고리로 EU제재 뚫기
미 등 서방국과는 군사 신경전
북극권·북대서양 초계활동 강화
경제협력 고리로 EU제재 뚫기
미 등 서방국과는 군사 신경전
북극권·북대서양 초계활동 강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경제협력이라는 당근을 동원해 유럽연합(EU)의 ‘약한 고리’들을 파고들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대러시아 제재 공조를 무너뜨리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아울러 러시아는 미국 및 다른 유럽국가와는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러시아가 유럽연합에 균열을 내기 위해 ‘당근 외교’를 펼치는 국가들로는 키프로스, 그리스, 체코 등을 꼽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6일(현지시각) 전했다. 키프로스는 가장 적극적으로 러시아 편을 들고 있다.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지난주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정책에 깊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러시아를 거들었다. 특히, 그는 올해 여름 만장일치로 유럽연합의 러시아 제제가 해제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제재를 유지하려면 유럽연합 28개 국가가 모두 동의해야 하는데, 키프로스가 반대표를 던질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선 희소식이다.
키프로스에는 영국의 군사기지와 도청시설 등이 있다. 또 키프로스는 2004년엔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등 서방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1974년 터키군의 키프로스 북부 점령 이후 러시아를 가장 중요한 외교적 후원자로 여기는 전통이 남아있는 데다, 최근 러시아 부자들이 예치한 돈이 키프로스 금융 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러시아와 키프로스의 끈끈한 관계는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이 지난 2월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푸틴 대통령은 키프로스에 25억달러의 금융 안정화 차관을 연장해줬다. 이에 키프로스는 자국 내 리마솔 기지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현재 서구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키프로스 해역의 가스 탐사와 개발에도 러시아가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8일 러시아를 방문하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도 방문에 앞서 유럽연합의 대러시아 제재를 “막다른 정책”이라고 언급하며, 이에 반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스는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대러 제재에 참여하긴 했지만 러시아 시장에 대한 키위·복숭아·딸기 등 농산물 수출이 막히면서 대러 제재가 반갑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독일을 비롯한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구제금융 상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것은 그리스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카드다.
체코 대통령도 다음달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정당화하는 열병식을 우려해 이 행사 불참을 선언한 것과 대조적이다.
러시아는 이런 국가들을 향해 유화정책을 펼치는 한편, 북극권과 북대서양에서의 전투기 초계활동을 강화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이 지역에서 최근 러시아 폭격기들이 사전 통보나 자체 신호 없이 갑자기 출몰하는 일이 잦아진 데 대응해 미 전투기 F-22가 지난해 알래스카주의 틴 시티 공군기지에서 10차례 긴급 출격을 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유럽에서도 북대서양에서 러시아 전투기 출현이 증가해 영국과 아일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군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나토군은 지난해 러시아 전투기 감시활동을 위해 100여차례 출격했으며, 이는 전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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