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프라스, 성경 없이 총리 취임 선서
구제금융 반대 우파와 연정 구성
채권단, ‘탕감·조건 변경 불가’ 강경
양보땐 포퓰리즘 정당 득세 우려
그리스, 내달 일부 상환기한 돌아와
구제금융 반대 우파와 연정 구성
채권단, ‘탕감·조건 변경 불가’ 강경
양보땐 포퓰리즘 정당 득세 우려
그리스, 내달 일부 상환기한 돌아와
그리스에 급진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구제금융 채무국인 그리스와 유럽연합 채권단이 팽팽한 기싸움에 돌입했다.
지난 25일 치러진 그리스 총선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둔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대표인 알렉시스 치프라스(40) 신임 총리는 채권단이 구제금융 조건으로 내건 가혹한 긴축과 구조조정을 더이상 버틸 수 없다며 전면적인 재협상과 채무탕감을 공언해왔다.
양쪽의 초반 기선잡기는 그리스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부터 가시화했다. 치프라스 대표는 26일 오후 카를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에게 총리 임명장을 받은 뒤, 통상 성경에 손을 얹는 그리스정교 방식의 선서 대신 평소대로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항상 그리스 인민의 이익에 복무하겠다”는 ‘시민 선서’를 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또 전임 총리들이 선서 직후 맨 먼저 무명용사묘지를 찾은 관례와 달리, 국립레지스탕스묘지를 찾아 헌화했다. 아테네 외곽에 있는 이 묘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된 200여명의 그리스공산당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묻힌 곳이다.
시리자의 연립정부 구성도 채권단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번 총선에서 시리자는 전체 의석 300석의 과반에 2석 못미치는 149석을 얻어 연정을 구성했다. 그런데 급진좌파정당인 시리자는 공산당이나 사회당이 아니라 민족주의 성향의 우파정당인 그리스독립당(13석)을 연정 파트너로 선택했다. 그리스독립당이 구제금융 조건에 가장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시리자가 이례적인 연정 파트너를 고르고 ‘긴축 반대’ 정부를 꾸린 것은 독일이란 황소에게 ‘붉은 깃발’을 든 도발”이라는 국제전략 전문가의 평가를 전했다. 독일은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채권단도 현재로선 그리스의 채무 탕감이나 구제금융 조건 변경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유로존 고위 관리들은 그리스의 시리자 정부에 대한 어떤 정치적 양보도 유럽의 포퓰리즘 정당들이 득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26일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덴마크의 예룬 데이셀블룸 장관은 “그리스의 새 정부가 부채 탕감을 요구해도 유로존 회원국들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그리스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와 같은 나라, 또는 그런 상황을 위해 ‘특별 항목’을 만들 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채권단의 강경한 압박 뒤에는 깊은 우려가 깔려있다.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1870억유로다. 반면, 국가부채는 3170억유로(약 3850조원)에 이른다. 원활한 채무상환은 커녕 국가경제의 지속가능성마저 의문스러울 정도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각국 장관들이 “그리스 유권자들의 선택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유로존 채권단은 당장 부채 감면이나 구제금융 조건 완화보다는 채무상환 기간 연장 등의 타협안부터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리스는 다음달에 5년만기 구제금융의 상환 기한을 앞두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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