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극우정당이 조금 세력을 늘리는 것에 대한 정치적 수사’라고 반응합니다. 하지만, 최근 유럽을 보면 그렇게 한가하게 반응할 상황이 아닙니다. 극우정당의 집권이 가시화된 상황입니다.
극우정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그 정당이 나치와 같다고 분류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현재 유럽의 극우정당의 이념이 나치보다는 훨씬 순화·순치됐고, 그 스펙트럼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유럽의 가치였던 다문화주의와 관용주의를 부인한다는 점에서 나치와 현재의 유럽 극우정당은 성격을 같이합니다. 나치나 현재 유럽 극우정당들은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 나치 탄생 전야와 유사=나치를 탄생시켰던 상황, 그리고 현재 유럽 극우정당의 세력을 확장시키는 상황이 비슷합니다. 나치를 키웠던 대공황 뒤 독일의 사회경제 상황과 현재 유럽의 경제상황이 유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젊은층의 좌절과 무기력이 비슷합니다. 스페인 등 일부 국가의 젊은층 실업률은 50%를 넘습니다. 유럽연합의 젊은층(15~24살) 평균 실업률은 23.5%로, 전체 평균 실업률 10.5%의 두 배가 넘습니다. 젊은층이 일자리를 구해도, 42%는 일시계약직입니다. 이는 성인에 비해서 4배나 높습니다. 또 32%는 파트타임직입니다. 이 역시 성인의 두 배 입니다. 젊은층의 4분의 3이 취업을 해도 불완전 고용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유럽의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면 현재의 기성세대 정도로 취업 사정이 나아질까요?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경기가 풀리면 조금 나아질 수 있겠지만, 현재의 취업 구도가 기본적으로 유지된다고 봐야 합니다.
미래의 전망이 보이지 않고, 현재에도 아무런 소속감 없이 부유하는 젊은이들은 현재 유럽의 기성 정치체제를 허무는 동력입니다. 투표율은 나날이 떨어지고, 기존 정당의 당원 가입율도 급감합니다. 기존 정치체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럽의 극우정당이나 극우세력들이 대약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치 집권의 동력이 된 유대인 문제와 비슷한 것이 현재 유럽을 휩쓸고 있습니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배척입니다. 나치가 당시 독일이 안고 있던 모든 문제의 책임을 유대인에게 돌리고 희생양 삼은 것처럼, 유럽 극우정당들은 현재 유럽 문제의 대부분을 무슬림들에게 돌리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난 프랑스 파리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기화로 유럽 각국의 극우정당들은 반이슬람·반다문화주의 선동을 극적으로 고조시키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 “2015년은 유럽의 정치 지진의 해”=이 때문에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싱크탱크인 이아이유(EIU)는 최근 조사를 통해서 2015년은 유럽의 정치적 지진이 축적되는 해라고 단정했습니다. 부상하는 극우정당들은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도 있고, 기성 주류 정당들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들 극우정당과의 연립정권을 구성해야만 하는 지경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예견했습니다. <비비시>도 20일 ‘민주주의의 날’이라는 특집방송을 통해서 유럽이 처한 기존 정치체제의 위기를 다뤘습니다.
실제로 유럽 극우정당들은 샤를리 테러 사건을 전후로 주요 3개국에서 지지율 1위 정당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11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반이슬람 기치를 내건 네덜란드의 자유당은 당장 선거가 치러지면 1당으로 올라설 것이란 결과를 받았습니다. 의회 전체 150석 중 자유당이 31석을 얻어 1위로 부상할 것으로 나타났는데, 자유당의 현재 의석보다 두 배나 많은 것입니다. 자유당은 선호정당 조사에서도 21%의 지지를 얻어 1위를 기록했습니다. 현재 79석의 제1당인 자유민주당의 의석은 당장 선거가 새로 치러지면 28석으로 쪼그라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헤이르트 빌더스 자유당 대표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뒤 “서방은 이슬람과 전쟁중”이라고 말해 나라 안팎에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현재 인종차별을 선동한 혐의로 피소된 상태입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
유럽 극우정당의 대표 격인 프랑스의 국민전선도 지난해부터 창당 이래 최고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민전선은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25%의 득표율로 프랑스 정당 중 1위를 차지한 이후 지지율이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현재 지지율은 28%로 여전히 1위입니다. 마린 르펜 대표도 현재 대선이 치러지면 결선투표에 진출할 수 있으며, 결선투표 경쟁자가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이면 그를 꺾고 당선될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무렵인 지난 6~8일 실시된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여론조사에서 르펜은 지지율 31%로 정치가들 중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국민전선은 테러 이후 하루 100~150명이 새로 입당해 3000여명의 신입당원이 모집됐다고 밝혔습니다.
오스트리아의 극우정당인 자유당도 지지율 27%로 1위 정당이 됐습니다. 자유당은 1999년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우파 국민당을 제치고 1위를 했는데, 자신들과의 연정 구성에 동의해준 국민당에 총리 자리를 양보해, 절반의 집권에 그쳤습니다. 2000~2005년에는 연립정부에 참여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자유당의 약진으로 현재 유럽 국가 가운데 극우 정당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로 평가됩니다.
■ 영국과 그리스가 시금석=오는 5월 총선을 치르는 영국에서도 기존 정치시스템인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제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미 15%의 지지율을 보이는 독립당이 보수당과 노동당의 기존 표들을 심각하게 잠식할 것으로 보입니다. 독립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나, 그보다는 새로 구성될 정부가 극도의 불안한 정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당장 그리스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정부가 들어설 전망입니다. 극우정당은 아니나 기성 정치질서와 기성 정당에 대한 반대 기치를 내걸고 현재 집권이 유력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등장입니다. 시리자의 집권은 유럽 정치질서에서 불안정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조건의 변경을 주장하는 시리자의 집권은 유로존과 유럽연합의 질서를 불안정하게 하고,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정치격변으로 이어질 가능성 큽니다.
유럽 다른 나라에서 기성 정당 질서를 거부하는 정당을 대부분 극우정당입니다.
현재 덴마크, 핀란드, 스페인,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모두 올해 각종 선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샤를리 테러 사건은 지난해부터 지지율을 높이는 유럽의 극우정당들의 약진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방과 이슬람권의 대립과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유럽의 대중들은 반무슬림·반이민·반다문화주의로 치달을 가능성이 큽니다.
■ ‘수정의 밤’과 샤를리 테러 사건=1938년 11월7일 아침 프랑스 파리 주재 독일대사관에 헤어셸 그린츠판이라는 17살 독일 태생 폴란드계 유대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린츠판은 3등 서기관 에른스트 폼 라트에게 안내되자마자, 외투에서 권총을 꺼냈습니다. 그러고는 권총을 라트에게 발사해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체포된 그린츠판은 부모에게 보내는 우편카드를 갖고 있었습니다. “신이 나를 용서해주시길… 전 세계가 내 항의를 듣도록 나는 항의해야 한다. 나는 이걸 할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우편카드는 그의 범행동기를 설명해줬습니다. 독일에 살고 있던 폴란드계 유대인 부모는 그의 범행 전에 독일에서 추방됐습니다. 당시 나치 정권이 외국인 거주허가 갱신을 명령했고, 이 과정에서 외국 출신 유대인들에게는 불허했습니다. 폴란드 정부는 독일의 폴란드계 유대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독일에서 추방된 폴란드계 유대인들은 국경 지역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이틀 뒤 라트가 숨지자, 독일 전역에서는 유대인 상점과 집들이에 대해 방화와 파괴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틀 동안 벌어진 이 폭력 사태는 ‘크리스탈 나흐트’(수정의 밤)라고 불립니다. 유대인 상점에서 깨져나간 유리들이 거리에서 수정처럼 빛났기 때문이죠. 나치의 공식발표로만 최소한 91명이 숨진 수정의 밤은 유대인 탄압이 물리적으로 바뀌는 전환점이었습니다.
80여년 전의 암살 사건은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테러에 시사점을 줍니다. 라트의 암살은 독일 등지의 유대인 박해를 비등점으로 끌어올리는 명분과 동력을 줬습니다. 샤를리 테러도 유럽에서 들끓는 무슬림 혐오를 비등점으로 끌어올릴지 우려됩니다.
암살된 라트는 사실 나치의 유대인 정책에 비판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이때문에 나치 친위대의 감시를 받는 대상인데, 나치의 유대인 정책에 항의하는 테러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샤를리 에브도>는 비록 무함마드를 풍자하기는 했으나, 서구에서 무슬림을 혐오하고 배척하려는 극우세력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자였습니다. 유럽의 다문화주의를 옹호하던 <샤를리 에브도> 편집진의 희생은 그 다문화주의를 거부하는 유럽 극우주의 확장에 이용되는 상황입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