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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도심 광장서 머리에 권총 쏴 자살한 70대 충격

등록 2012-04-05 23:08수정 2012-04-06 14:05

그리스 약사출신 70대 생활고 항의 ‘공개자살’ 파문
“정부가 살아갈 능력 파괴”…의회 100m옆 광장서 머리 쏴
“자살 아니라 국가의 살인” 시민 1500여명 격렬 시위
생활고를 비관한 그리스의 70대 연금생활자가 4일 사람들로 붐비는 아테네 도심에서 정치인들의 무능을 질타하며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최악의 재정위기와 긴축정책에 시달리는 그리스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연민과 분노가 뒤섞인 시민들이 격렬한 시위에 나서 경찰과 충돌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약사를 은퇴한 뒤 연금으로 생활해온 디미트리스 흐리스툴라스(77)가 이날 오전 아테네 도심 신타그마 광장 지하철역 입구에서 머리에 권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로이터> 등 외신들이 5일 보도했다. 정부의 초긴축정책을 논의하고 승인한 의회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유서에서 현 정부를 나치 점령 당시의 부역자들에 빗대어 “점령 정부는 내가 35년간 착실하게 부은 연금으로 살아갈 능력을 문자 그대로 완전히 파괴해버렸다”며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지기 전에 존엄한 종말을 맞이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썼다.

그리스 정치권은 국가부도를 피하려 국제통화기금과 유럽연합의 구제금융 조건으로 세금 인상, 임금과 연금 삭감 등 혹독한 긴축정책 요구를 수용한 상태다. 이번 사건은 그에 따른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그리스 중산층의 비참한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시민들은 노인이 자살한 현장의 나무 옆에 즉석 추모소를 만들고 앞다퉈 꽃과 촛불, 그리스 국기들을 놓아두기 시작했다. 나무에는 추모와 분노와 염원을 적은 메모들이 빼곡히 나붙고 있다. 60살의 한 연금생활자는 “끔찍하다. 우리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말아야 했다. 정치인들은 응징을 받아야 한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이날 시민 1500여명은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으며, 5일에도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서자 청년들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충돌했다. 시위대에선 “이건 자살이 아니라 국가가 저지른 살인”이라는 외침도 터져나왔다.

재정위기 타개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도 더 깊어질 전망이다. 그리스 급진좌파 정치조직 ‘안타르시아’의 페트로스 콘스탄티누는 “한 사람이 자기 목숨을 던질 지점까지 왔다는 것은 긴축정책과 빈곤이 사람을 어디로 끌고 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카스 파파디모스 총리는 성명에서 “우리 동료 시민이 생을 마감한 것은 비극”이라며 “우리 모두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스는 현재 실업률이 21%까지 치솟았고, 젊은이들은 2명 중 1명꼴로 실업자다. 긴축정책이 시행된 지난 3년간 자살 또는 자살 시도자도 1700명을 넘어섰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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