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덤핑사태에 수익률도 ‘구제금융국 수준’ 급등
연일 베를루스코니 퇴진시위…여당도 동조 움직임
연일 베를루스코니 퇴진시위…여당도 동조 움직임
전세계가 이탈리아를 불안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그리스발 국민투표란 ‘악재’에 휘청이며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이 연일 기록적인 상승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국내의 정치적 불안도 가속되는 탓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3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이탈리아가 무너질 경우 유로존의 핵심 국가와 은행들에도 위기가 전이돼, 유럽을 넘어 전세계로 금융 불안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3·4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이탈리아의 부채위기에 대한 ‘방어막 치기’에 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 사회의 신뢰 회복 압박이 높아지면서 이탈리아는 급기야 연금 및 규제 개혁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감시를 받겠다고 지난 4일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탈리아의 국가 부채는 10월 말 현재 1조8995억유로(2944조원)에 이르렀다. 국내총생산(GDP)의 150%, 유로존 전체 국가부채의 23%에 이르는 수치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아무리 “이탈리아 경제는 견고하다”고 강조해봤자 투자자들은 못 믿겠다는 반응뿐이다. 무디스·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 회사들이 잇따라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고, 최근엔 그리스발 국민투표 소동에 이탈리아 국채 덤핑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자율)은 지난 4일 6.3%까지 치솟았다.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를 구제금융으로 몰고 간 ‘7%’ 직전까지 온 것이다.
경제개혁을 힘있게 밀고 나가야 할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위기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5일에는 야당 지지자 등 수만명이 수도 로마에 쏟아져 나와 경제 실정 등을 비판하며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고 <시엔엔>(CNN) 방송 등이 보도했다.
물론,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성추문과 부정부패 등 온갖 스캔들 속에서도 신임투표 등을 통해 회생해왔던 그도 이번만큼은 간단히 넘길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야당은 물론 집권당 일부 의원들도 성추문 등을 이유로 그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8일로 예정된 예산 개혁안 표결 때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유로존 부채위기의 정점에 있는 그리스는 지난 3일 2차 구제금융 수용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철회한 데 이어,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가 5일 새벽 의회 신임투표를 통과하며 한고비를 넘겼다. 그리스 여야는 이날 2차 구제금융안 수용 등을 위해 곧장 통합정부 구성을 위한 물밑접촉을 시작했지만, 제1야당인 신민당이 총리 퇴진과 조기 총선 실시를 여전히 요구하고 있어 정치적 불안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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