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사람들’ 브뤼셀 집결
시위대 1700㎞ 도보행진 이어
EU 27개국 정상회담 앞두고
15일 유럽 전역서 시위 예고
시위대 1700㎞ 도보행진 이어
EU 27개국 정상회담 앞두고
15일 유럽 전역서 시위 예고
미국 금융의 심장부 월가에 ‘리버티 플라자 공원’이 있다면, 유럽연합의 수도 벨기에 브뤼셀에는 ‘엘리자베스 공원’이 있다. 미국의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가 탄력을 받으면서, 바다 건너 유럽에서도 ‘분노한 사람들’이 들썩이고 있다. 99%를 소외시키는 현재의 경제·정치 시스템에 반기를 든 분노한 사람들이 15일(현지시각) 유럽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면서, ‘유럽 점령’ 시위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8일 오후, 브뤼셀 쿠켈베르크구의 엘리자베스 공원에 커다란 배낭을 멘 청년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쌀쌀한 바람이 불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인파는 200명 가까이로 불어났다. 긴축정책에 반대해 지난 5월부터 스페인에서 한달간 텐트시위를 벌이던 청년 시위대 ‘분노한 사람들’에 동조해 유럽 곳곳에서 합류한 사람들이었다.
시위대는 지난 7월 스페인 마드리드·바르셀로나를 출발해 1700㎞의 도보행진을 해왔다. 출발 당시 100여명이었던 시위대는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를 거치며 200여명으로 불어났다. 이날 시위대가 도착한 엘리자베스 공원에서는 탬버린과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성공적인 ‘장도’의 끝을 기념하는 잔치가 열렸다고 유럽 뉴스 전문 방송 <유로뉴스>가 9일 보도했다. 공원 곳곳에서는 “유럽연합은 분노의 소리를 들어라” “진짜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브뤼셀로 집결한 까닭은 이곳에서 17·18일 열릴 유럽연합(EU) 27개국 정상회의를 겨냥해서다. 유럽의 부채위기·금융위기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이번 회의를 앞두고 유럽의 분노한 시민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15일 유럽 전역에서 일제히 시위를 열기로 했고, 특히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브뤼셀을 집중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브뤼셀에 집결한 시위대는 이날부터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15일까지 브뤼셀 곳곳을 돌며 집회를 여는 한편, ‘야간 의회’를 열어 “무능한 각국 정치인과 유럽연합 관료들이 아닌 시민의 의회가 시민을 위한 진정한 대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에서부터 시위에 합류했다는 티에리 르코르푸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과 도시들을 지나며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와 제안들을 유럽 집행위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럽인들의 분노는 그리스발 부채위기가 이웃 유럽국가들로 옮겨붙으면서, 각국 정부들이 임금삭감·대량해고·복지혜택 축소 등을 내용으로 한 긴축조처들을 내놓은 데서 이미 몇달 전부터 시작됐다. 가혹한 긴축정책이 촉발한 시위는 스페인·그리스·포르투갈 등 유럽국가를 찍고 바다 건너 미국 월가로 번졌다가, 현행 경제·정치 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돼 유럽으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최대 수만명이 결집할 것이라고 주최 쪽이 밝힌 15일 브뤼셀 집회 이외에도 스페인·아일랜드 등 유럽국가를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 홍콩, 아르헨티나 등 전세계 25개국에서 ‘점령하라’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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