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확산 근거없어
영국에서 30여년 만에 남성 동성애자들의 헌혈이 허용된다.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 보건장관들이 남성 동성애자·양성애자에 대한 평생 헌혈금지 조처를 완화해, 12개월 동안 성관계를 갖지 않은 경우 헌혈을 허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비비시>(BBC) 방송 등이 8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에선 11월7일부터 남성 동성애자 등이 헌혈을 할 수 있게 되고, 북아일랜드도 조만간 완화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이번 조처는 영국의 혈액·조직·기관 안전 자문위원회가 그동안 의학적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남성 동성애자와 남성 양성애자에 대한 평생 헌혈 금지 조처가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12개월의 헌혈 유예기간을 둔 것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잠복기’를 고려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에이즈(HIV) 감염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1980년대부터 남성 동성애자 등의 헌혈을 평생 금지해왔다. 하지만 동성애자 인권단체 등은 이런 조처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일 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이라며 ‘헌혈권’을 요구해왔고, 의학계에서도 이들의 헌혈을 평생 금지할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지난해 말 발간한 자료에서도 동성애자의 헌혈을 허용한 이후 에이즈 감염 위험이 의미있게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통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남성 동성애자 단체들은 정부의 헌혈 금지 완화를 환영하면서도, 콘돔 사용 여부나 파트너 숫자와는 상관 없이 모든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무조건 12개월의 유예기간을 둔 것은 과도할뿐 아니라, 여전히 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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