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갱단 척결사’ 윌리엄 브래턴 전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장
청년실업·빈곤 대책 대신 ‘폭동처벌’ 강경카드 꺼내
“길거리 깡패 잡으면 해결”…정부 엄단책에 우려도
“길거리 깡패 잡으면 해결”…정부 엄단책에 우려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1일 영국 전역을 휩쓴 ‘폭동’의 해결을 위해 바다 건너 미국의 ‘갱단 척결사’ 윌리엄 브래턴 전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장의 자문을 받겠다고 밝혔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의회 긴급회의에 출석해 “약탈과 방화의 배후에는 갱단이 있다”며 “길거리 깡패를 다루는 데 익숙한 외국의 전문가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고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한발 더 나아가 캐머런 총리가 미국 국적자인 브래턴을 런던경시청장 후보로 점찍어 놓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러브콜’을 받은 브래턴 전 국장은 뉴욕 경찰국장(1994~1996),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장(2002~2009)을 지내며 ‘범죄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낮춘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평소 “약탈이나 폭동은 핵심 분자만 잡아들이면 해결된다”는 지론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캐머런 총리가 브래턴 기용 ‘카드’를 꺼내든 것은 11살 청소년부터 60대 노인까지 학생, 지게차 운전자, 보조교사, 우체국 직원, 부유층 자제 등 한데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참여한 폭동의 원인이 “빈곤 때문이 아니라 폭력을 미화하고, 권위를 무시하고, 책임은 방기한 채 권리만 내세우는 문화”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높은 실업률과 긴축정책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젊은층의 분노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분석보다는 극소수 범죄자들에 편승한 범죄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거릿 대처 정부 이후 30년 만의 최악의 폭동에 대한 후속 조처는 “신속한 사법처리” 등 ‘법과 질서’의 회복을 강조하는 강경 처방에 집중돼 있다. 통행금지 확대 검토를 비롯해 범죄 혐의가 의심될 때 경찰이 복면을 벗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페이스북과 트위터, 블랙베리 메신저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폭력적인 범죄 책략을 짜는 데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사이트들의 활동을 추적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엄단’ 분위기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신속한 사법처리를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 제대로 된 법적 심판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생수 한 통을 훔친 죄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은 대학생의 예가 대표적이다. <텔레그래프>의 보도에 따르면, 니컬러스 로빈슨(23)은 지난 7일 새벽 런던 남동부 브릭스턴의 한 슈퍼마켓에서 3.5파운드(6100원)짜리 생수 한 통을 훔친 죄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경찰과 맞닥뜨리자 물통을 버리고 도망치다가 붙잡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전과도 없었고, 고가의 물품을 훔친 것도 아니었으며 죄에 대해서도 뉘우치고 있었다. 하지만 판사는 “공공질서를 심하게 해쳤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보호관찰관노조(NAPO)의 해리 플레처 사무부총장은 “(이번 폭동의 배경에는) 탐욕과 한탕주의, 고의적 반달리즘(파괴 행위), 경찰에 대한 극도적 혐오감 등 복잡한 동기가 깔려 있다”며 “(처벌에 대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숙고해야 하는데, ‘보이는 정의’의 신속한 실현을 원하는 정부가 제시하는 증거만 갖고서는 판단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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