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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나는 방금 아들을 잃었습니다
왜 서로를 죽여야 합니까
이제 진정하고 집으로 돌아갑시다”

등록 2011-08-11 21:06수정 2011-08-11 22:29

영국 폭동에 막내 잃은 아버지의 호소
인종갈등 비화 ‘자제’ 촉구
추모현장 평화 기원 행렬
“나는 방금 아들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흑인이든 아시아인이든 백인이든 우리는 같은 지역사회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왜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합니까. 왜 우리는 이런 일을 저지릅니까. 자신의 아들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장 앞으로 나와보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이제 진정하고 집으로 돌아갑시다. 제발.”

영국을 휩쓸고 있는 폭동의 와중에 폭도들의 손에 금쪽같은 막내아들을 잃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타리크 자한(45)은 ‘복수’ 대신, 젊은이들에게 폭동의 중단을 호소했다고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이 11일(현지시각) 전했다.

그의 아들 하룬(21)은 폭도들로부터 동네를 지키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10일 새벽 1시 버밍엄시 윈슨그린의 더들리로드의 주유소로 돌진해온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 차량 정비공으로 일하며 권투선수가 되고 싶어했던 착한 아들이었다. 바로 근처에서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현장으로 달려가 얼굴과 손이 피범벅이 되어가며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아들은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함께 참변을 당한 샤자드 알리(30), 압둘 무사비르(31) 형제도 목숨을 잃었다.

세 사람은 모두 남아시아계 무슬림, 뺑소니 살인 용의자로 붙잡힌 이는 32살 흑인 청년이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네에선 벌써부터 ‘보복’을 해야 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산다는 아미르 하위드(20)는 <에이피>(AP)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이 검둥이들을 찾아내 머리를 잘라 개먹이로 던져줘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인구 100만명의 도시 버밍엄에는 다양한 피부색과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섞여 사는 까닭에, 인종갈등이 종종 벌어져왔다. 2005년 파키스탄 출신 깡패들이 자메이카 출신 14살 소녀를 성폭행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틀 동안 카리브해 출신 흑인들과 아시아계 사이에 유혈 사태가 빚어진 게 대표적이다. 1980~90년대에도 백인경찰의 인종차별 문제와 아시아계의 상점 급증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 수백명 앞에 타리크 자한이 선 것도 이번 사태가 인종갈등으로 비화돼 자신처럼 아들 잃은 슬픔을 겪는 이가 나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다른 버밍엄 주민들처럼 내 걱정도 이번 사고가 더 큰 사회의 불신과 벽을 만드는 도화선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들의 죽음 이후) 인종과 종교, 출신과 관계없이 다양한 지역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위로와 지지의 메시지를 받았다”며 “이번 사태는 인종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타리크 자한의 이런 호소에 사람들도 움직이고 있다. 하룬 등이 숨진 현장에는 추모의 촛불과 평화를 기원하는 꽃을 들고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촛불집회를 준비한 하프릿 싱은 <비비시>(BBC) 방송에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이 다쳤다. 이 폭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라며 “폭동을 중단하고 함께 단합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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