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휩쓰는 폭동
재정적자에 복지 축소…16~24살 20%가 일자리 없어
“잃을 것 없다” 약탈·방화…경찰진압 사태 악화시킬수도
재정적자에 복지 축소…16~24살 20%가 일자리 없어
“잃을 것 없다” 약탈·방화…경찰진압 사태 악화시킬수도
“정부는 지금 자신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이러다간 폭동이 일어날 거예요!”
영국의 소요사태가 벌어지기 꼭 일주일 전인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 누리집에 올라온 동영상에서 한 청년이 한 얘기다. 정부의 예산감축 계획에 따라 런던 해링게이 구의회가 지역 청소년센터 13곳 중 8곳의 문을 닫은 뒤, 방과후에 갈 곳이 없어진 아이들이 갱단에 가입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던 중 나온 말이다.
29살 청년 마크 더건이 경찰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것을 계기로 시작된 소요사태가 10일(현지시각)까지 닷새째 이어지면서 영국 언론들은 시민들을 한순간에 ‘폭도’로 만든 원인이 무엇인지 자문하고 있다.
범죄학자 존 피츠 교수는 9일 <비비시>(BBC) 방송 인터뷰에서 약탈 등 일탈행위에 참여한 이들 다수는 단순히 (분위기에) 휩쓸린 이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약탈행위를 통해) 힘없는 사람들은 갑자기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됐고, 이런 기분에 도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은 까닭에 대해 폭동이 학교가 쉬는 주말에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난 젊은이들의 움직임을 단순한 군중심리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 동영상 속 청년의 경고처럼 이미 예고돼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이웃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에서처럼 실업률 상승과 긴축정책으로 인한 사회복지 서비스 축소로 젊은이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다는 설명이다. 영국 젊은이들은 지난해 11월 정부의 대학 등록금 3배 인상안 발표 때도 한달간 거리로 나와 불만을 터뜨린 바 있다.
영국 통계청 발표를 보면, 16~24살 실업자 수는 91만7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령대 젊은이 20%가 하릴없이 놀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폭동의 시발점이 된 토트넘이 포함된 런던 해링게이 구의회는 이 와중에 올해 예산을 75%나 감축했다. 젊은이들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다.
런던정경대 박사과정의 한 학생은 “(폭동에 나선) 젊은이들이 누구도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다”고 <알자지라> 방송에 말했다. 이런 지적은 16살 때 학교를 떠난 뒤 줄곧 실업자라는 토트넘 거주자 제이슨(26)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로이터> 통신에 “내 친구들은 모두 나처럼 실업자고, 그래서 갈 곳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오려면 도움이 필요한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모여 있으면 갱단 취급을 받고, 흩어지면 뭔가 수상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 의심만 받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잃을 것 없는 성난 젊은이들은 약탈과 방화 등 비행을 저지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긍정적 변화를 요구하는 중동의 민주화 시위와는 달리, 폭력적 행위를 통해서 참아왔던 말이라도 속시원하게 한번 해보자는 허무주의적 성향이 보인다는 것이다. 토트넘의 한 젊은이는 <엔비시>(NBC) 방송 인터뷰에서 “두달 전 런던경찰청으로 2000명이 넘는 흑인들이 몰려가 평화시위를 벌였지만 언론에는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며 “폭동이라도 일어났으니까 당신(기자)이 내 얘기를 듣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영국 정부와 경찰은 이들의 불만을 파악하기에 앞서, 폭동 가담자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며 ‘엄단’을 벼르고 있을 뿐이다. 시민단체 ‘오큐파이드 런던’의 활동가인 클라라는 “매일 경찰한테 시달려온 사람들은 더이상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엄단이) 사태를 진정시킬지 더 악화시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런던의 컨설팅업체 에이케이이(AKE)의 유럽 전문가 루이스 타가트도 “만일 당국이 폭동 이면에 자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진짜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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