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정의개발당 절반 득표로 총선 압승
높은 경제성장 바탕 독자외교 노선 펼쳐
“권위주의 리더십” 비판 시각도 만만찮아
높은 경제성장 바탕 독자외교 노선 펼쳐
“권위주의 리더십” 비판 시각도 만만찮아
12일 치러진 터키 총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57) 총리가 이끄는 중도보수 성향의 정의개발당이 압승을 거뒀다. 에르도안 총리는 2003년 집권 이래 내리 3연임에 성공했다.
어릴 적 길거리에서 레모네이드를 팔아야 했던 빈민가 출신 에르도안 총리는 이제 이슬람 가치와 서구식 정당 민주주의를 결합한 ‘터키식 모델’을 이끌며 유럽과 이슬람권에서 중량급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굳히게 됐다.
84.8%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이번 총선에서 정의개발당은 49.8%를 얻어 공화인민당(25.9%)과 민족주의행동당(13.0%)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터키 일간 <휘리예트 데일리뉴스>가 13일 보도했다. 정의개발당은 전체 의석 550석 중 326석(59%)을 확보했다. 공화인민당은 135석(25%), 민족주의행동당은 53석(10%)을 얻었다. 쿠르드족을 대변하는 평화민주당은 6%의 득표율로 36석을 차지했다.
집권당의 압승은 에르도안 총리 집권 8년 동안 터키가 5~8%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세계 16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것이 큰 힘이 됐다. 서방은 오래전부터 이슬람과 민주주의 정치, 역동적 시장경제가 공존하는 ‘터키식 모델’을 주목해왔다. 특히 올해 초부터 아랍권 전역에서 민주화 열풍이 휩쓸면서 8년째 터키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에르도안 총리의 통치력이 더욱 돋보이게 됐다. 경제적 성장을 자신감으로 해서, 그는 지난해 이후 이란 핵협상 중재에 앞장서고 나토의 리비아 군사개입에 반대하는 등 서방과 다른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펼쳐왔다.
독실한 무슬림인 에르도안은 케말 파샤 이후 90여년간 계속된 터키의 세속주의의 전통은 지키되 이슬람 정체성을 중시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의 편견과 침탈에 찌든 터키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거꾸로 이는 그가 공화정과 세속주의를 철칙으로 삼는 군부 및 사법부와 번번이 대립관계에 놓이도록 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스탄불 시장 시절인 1997년에는 이슬람주의를 고무·찬양하는 시를 썼다가 한때 투옥되기도 했다. 그해에 터키 헌법재판소는 에르도안의 소속당인 복지당에 대해 세속주의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정을 내리고 정당을 해체해버렸다. 에르도안이 2001년 정의개발당을 창당한 배경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최근 군부의 무혈쿠데타 이후 1982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세속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하는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하고, 유럽연합(EU) 가입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시민적 자유권을 확대하는 게 뼈대다. 정의개발당은 이번 총선에서 단독 개헌 발의 정족수인 ‘의석의 3분의 2’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에르도안 총리는 다시 한번 강력한 개헌 의지를 천명했다. “우리를 지지했든 아니든 모든 이를 포용할 것”이라며 “의회 안팎의 정당들과 비정부기구들과도 자리에 앉아 (개헌과 관련한)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르도안 총리가 반대 의견을 배척하는 권위주의 리더십을 갖고 있다거나, 개헌 추진은 권력기반 강화 의도라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찮다. 개헌 추진도 야권의 강한 반대로 난항이 예상된다. 이스탄불 빌기대학교의 겐제르 외즈잔 교수는 13일치 영국 일간 <가디언>에 “에르도안은 대통령제를 원하며, 그게 개헌의 주목적”이라며 “총리가 집권당의 모든 후보를 직접 지명한 것은 이번 총선이 처음”이라고 비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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