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목록’ 약품 늘리고 구급차 일자리도 줄여
“비용 삭감 위해 건강 양보” 근시안 정책 비판
“비용 삭감 위해 건강 양보” 근시안 정책 비판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영화 <식코>(2008)에서 돈이 없는 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를 비판하며 국가가 의료를 보장하는 쿠바와 영국을 ‘찬양’했다. 하지만 이젠 이도 옛말이 되는 듯 하다. 재정적자 줄이기에 ‘올인’한 영국 정부가 대대적인 의료예산 감축에 나서면서, 국민 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의 각 지역 의료서비스와 보건정책을 총괄하는 기초건강보호트러스트(PCT)들이 최근 ‘제한목록’(Red List)에 올리는 약품 수를 늘리고 있다고 <텔레그래프>가 12일 보도했다. 제한목록 약품은 일반의가 아닌 전문의의 처방으로만 구할 수 있는데, 대개는 값비싼 특허약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 당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만 32개의 약품이 새로 제한목록에 올랐다. 여기엔 당뇨병 치료제 글립틴과, 심장병 치료제 스태틴, 골다공증 치료제, 파킨슨병 치료제 등이 포함돼 있다. 지역 의원 등 일반의들이 이런 약 대신 저렴한 복제약을 처방하도록 유도해 국가의 약제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또 의료전문 잡지 <펄스>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선, 예산감축 압박을 받고 있는 기초건강보호트러스트 134곳 중 73곳이 지난해 제한목록 품목 약품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의료·환자단체 등은 비용 감축이 환자 치료를 뒷전으로 몰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 조처에 따르면 지역의원들은 복제약 처방을 늘려야 하는데, 최근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심장병 치료 특효약인 스태틴을 복제약으로 대처할 경우, 심근경색과 사망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당뇨병 연구·예방단체의 바버라 영 대표는 “인간의 건강을 비용 감축에 양보해서는 안된다”며 “대단히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가디언>은 또 예산 감축의 여파로 구급·외래 서비스도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국가의료서비스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7~12월 응급실 처치 목표시간(응급실 도착 뒤 귀가·입원까지의 시간)인 4시간 안에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 수는 29만2052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17만6522명)보다 65%나 늘어났다. 런던구급차서비스(LAS)의 일자리가 890개 줄어든 시기와 일치한다. 존 헤이워드 응급의학학회 회장은 “환자들은 몰려드는데 응급의료진과 병상은 부족하다”며 “응급의료시스템이 상황 대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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