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사관 역사박물관 계획에 사학자들 “신민족주의” 반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우파적 역사관을 두고 프랑스에서 ‘문화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자신의 이런 역사관을 관철시키기 위한 ‘프랑스 역사박물관’을 건립하려는 계획을 추진하자 프랑스 역사학자들과 건립장소로 지정된 국립문서보관소 직원들이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선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9월 파리 중심부 마레 지구에 위치한 국립문서보관소 자리에 프랑스의 국가적 정체성에 중점을 둔 ‘프랑스 역사박물관’ 건립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시절 문화적 업적을 남기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다. 조르주 퐁피두는 퐁피두센터, 지스카르 데스텡은 오르세 미술관, 프랑수아 미테랑은 루브르박물관의 유리피라미드와 국립도서관, 자크 시라크는 브랑리 인류학박물관을 남겼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2012년 대선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내년부터 이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밀어붙이고 있다.
<르몽드>를 중심으로 역사박물관 계획에 반대하는 기고 활동을 계속해 온 프랑스의 저명한 역사학자 9명은 10일 프레데릭 미테랑 문화장관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사르코지의 역사관을 ‘신민족주의’로 규정하고 “반이민적 입장은 프랑스의 과거를 조롱거리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인 피에르 노라 등 역사학자들은 “민족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구시대적 행태는 프랑스의 오랜 이민의 역사를 배제하게 될 것이고, 국립문서보관소가 위치한 왕궁에 역사박물관을 만드는 것은 프랑스의 역사를 민중의 역사가 아닌 왕과 황제의 역사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서보관소 직원들도 “문서보관소를 살리자”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집단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적 반대 속에 연금개혁법 통과를 강행한 사르코지 정부는 물러설 기미가 없다. 미테랑 문화장관은 ‘혁신적으로 야심적인’ 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해 논쟁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반대 여론이 프랑스에서 새로운 문화적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마다 반대에 직면했던 ‘에펠탑 신드롬’과 같은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라,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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