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프랑스 노동자들이 28일 ‘전국 행동의 날’에 맞춰 파리 도심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 ‘디케’ 인형과 “말 좀 하게 해달라”고 쓴 깃발이 눈길을 끈다. 파리/신화 연합뉴스
프, 9번째 총파업·시위 참가자수 절반으로 줄어
노조 “발효중지” 요구…사회당 “집권하면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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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안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 노동계가 28일 ‘전국 행동의 날’에 맞춰 대대적인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전국 단위의 동시 총파업과 항의 시위만 벌써 아홉번째다. 그러나 전날 프랑스 하원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금개혁 법안을 최종 인준하면서 반대 운동도 점차 쇠퇴하고 있다고 <아에프페>(AFP) 등 외신들이 전했다.
프랑스 노동계는 이날 전국 270여 곳에서 수십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파업과 거리시위를 벌였으나 참가자 수는 급격히 줄었다. 지난 19일 ‘행동의 날’에 견줘, 경찰 추산 110만명에서 56만명으로, 노동계 주장으론 35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절반 가까이 급감했다. 이날 파업 참가자들이 많았던 상당수 공항에선 국내선 항공편이 3분의 1에서 절반가량 취소됐으나, 고속열차 테제베(TGV)와 국영철도, 지하철, 버스 등 육상교통편은 큰 차질을 빚지 않았다. 프랑스 전역을 최악의 에너지 대란에 빠뜨린 정유공장도 12곳 중 8곳이 가동을 재개했다.
프랑스 최대 노동단체인 노동총연맹(CGT)의 베르나르 티비 위원장은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이후 처음으로 이처럼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진 것은 인상적”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법안 발효 중지를 요구했다. 반면 법안 강행의 선봉장인 에리크 뵈르트 노동장관은 “항의시위가 현저하게 느슨해진 것은 지금의 위기가 수일 내지 수주일 안에 끝날 것이란 희망을 갖게 한다”며 여유를 보였다. 의회를 통과한 연금법안은 이변이 없는 한 다음달 초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사를 거친 뒤, 다음달 15일께 사르코지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발효될 전망이다.
그러나 항의시위의 파고가 낮아졌다고 해서 민심까지 가라앉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현지 일간 <르 파리지앵>이 27일 발표한 최신 여론조사를 보면, 아직도 응답자의 65%가 노조단체들의 법안반대 투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리시위 방식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법안 자체에 대한 반대 여론은 상당히 높은 셈이다.
노동계는 다음달 6일로 예고된 열번째 ‘전국 행동의 날’ 투쟁을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문제는 뾰족한 타개책이나 명예로운 퇴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르코지 정부는 의회의 최종통과 전에 노동계와 일정 정도 타협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으나,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노조 지도부는 국민 3명중 2명이 연금개혁 반대 파업을 지지하는데도 아무런 성과나 명분도 없이 투쟁의 깃발을 내릴 수 없는 처지다.
프랑스 사회당은 28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법안 서명 유보를 요구했다. 세골렌 루아얄 전 사회당 대선 후보는 이날 “우리는 법안 통과를 막지 못했지만 결국은 형제애와 정의의 가치가 승리할 것”이라며, 2012년 대선에서 사회당이 집권하면 연금개혁법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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