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다이클럽서 대선 겨냥해 ‘계산된 발언’
현대통령 “권력투쟁 원치않아” 한발 후퇴
현대통령 “권력투쟁 원치않아” 한발 후퇴
블라디미르 푸틴(57·사진) 러시아 총리의 2012년 대통령직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다.
푸틴 총리는 6일 흑해 연안 휴양지 소치에서 열린 ‘발다이토론클럽’과 만찬모임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1933~1945년 재임) 미국 대통령도 미국 헌법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에 4번 연속 당선됐다”며 2012년 대선출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시사했다. 푸틴 총리는 ‘다시 출마하게 되면 러시아 정치 체제에 해를 주지 않겠나’라는 질문을 받고 “나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현행법률이나 헌법에 위배되는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장기 집권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푸틴과 측근들이 루즈벨트 대통령의 예를 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푸틴이 직접 언론을 향해 공식 발언하기는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대통령직 복귀를 위한 정지 작업을 벌여온 푸틴의 계산된 발언으로 보고 있다. 발언 무대가 ‘발다이토론클럽’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발다이 토론클럽은 국영 <노보스티통신>이 2004년 푸틴 당시 대통령의 의도를 반영해 언론인과 학자들을 초청해 만든 연례 토론 모임으로 매년 대통령이 참석해왔고, 푸틴은 대통령과 총리로서 빠짐없이 참석해왔다. 이번에 메드베데프가 참석하지 않은 데 대해 푸틴의 압력이 있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푸틴 총리는 지난달 30일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와 회견에서도 ‘2012년 대선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련의 발언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둘 중 한명이 2012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며, 이에 대한 사전 합의를 도출할 것”이라던 과거의 발언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로 들린다. 재선에 의욕을 보이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4) 대통령이 지난달 <리아노보스티통신>과 회견에서 재선 출마를 배제하지는 않으면서도 “권력 투쟁을 원치 않는다”며 한발 물러선 것과도 대조적이다.
이번 여름 푸틴 대통령이 ‘강력한 지도자상’을 굳히기 위해 부쩍 다양한 언론 플레이를 벌인 것도 복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비치고 있다. 푸틴은 지난달 10일 메드베데프가 소치에 머무는 사이 산불 현장에 수륙양용 소방항공기의 부조종사로 직접 진화작업을 벌이고 피해 지역을 방문해 지원을 약속하는 등 ‘보호자’로서 이미지를 재확인했다.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세바스트폴에서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극동의 고속도로를 러시아제 노란 라다스포츠카를 타고 질주하는가 하면, 캄차카 연안에서 배를 타고 고래에 석궁을 날리는 건강한 모습이 러시아 언론에 크게 부각되기도 했다.
푸틴은 1998년 연방보안국장에 임명된 데 이어, 1999년 5월 총리에 전격발탁된 뒤 그해 12월31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사임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기까지 초고속 출세가도를 달렸다. 2008년까지 두 차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회복한 강력한 지도자로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내리 3선을 금지한 헌법을 개정하는 대신 푸틴은 2008년 측근인 메드베데프 총리를 대선후보 내세우고 자신은 ‘상왕’격인 총리직을 맡는 편법을 통해 2012년 대통령직 복귀를 준비해왔다.
러시아의 기성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푸틴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쌍두마차 형태의 지도체제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푸틴-메드베데프의 다음 수순은?>이란 책을 쓴 니콜라이 즐로빈 세계안보연구소 러시아·유라시아 프로젝트 소장은 “두 사람의 행동패턴은 분명히 다르다”며 “그러나 푸틴 총리 없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있을 수 없듯이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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