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55) 프랑스 대통령
불법정치자금 의혹 수사…가문 법정다툼서 증언 나와
세계 1위 화장품 회사 로레알의 대주주 모녀간의 재산싸움으로 시작된 ‘베탕쿠르 사건’의 불똥이 결국 니콜라 사르코지(55) 프랑스 대통령에게까지 번졌다.
프랑스 경찰은 6일 사르코지의 대선캠프가 세계 최고의 여성 갑부인 릴리안 베탕쿠르(87)로부터 거액의 정치헌금을 불법으로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중상모략”이라고 부인했지만, 소속당인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원내대표인 장 프랑수아 코페를 포함한 우파 유력 정치인들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해명할 것을 원했다. 야당인 사회당의 장 마르크 에로 원내대표는 “베탕쿠르 사건이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조만간 사르코지 대통령이 텔레비전 성명 발표를 고려하고 있다고 대통령의 측근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프랑스의 탐사보도 웹사이트인 ‘메디아파르’는 2008년까지 12년 동안 베탕쿠르의 회계사였던 ‘클레르’를 인용해 사르코지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파리 근교 뇌이 시장 재직 시절 베탕쿠르의 집에서 저녁 만찬을 먹을 때마다 현금 봉투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베탕쿠르의 집에 사는 누구나 사르코지가 돈을 받기 위해 베탕쿠르를 만나러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클레르는 또 대중운동연합의 재정담당 책임자였던 에리크 뵈르트가 2007년 대선 두 달 전에 15만유로(약 2억3천만원)의 현금을 건네받았다며 구체적인 액수까지 밝혔다. 클레르의 변호인은 클레르가 이런 내용을 경찰에 진술했음을 확인했다고 <아에프페> 통신은 보도했다. 프랑스에서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기부는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베탕쿠르 사건은 170억유로(약 25조원)의 재산을 가진 베탕쿠르가 지난해 자신의 전속 사진사인 프랑수아 마리 바니에(63)에게 예술품·현금·부동산·보험증서 등 10억유로(약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증여한 데 대해, 외동딸이자 로레알 임원인 프랑수아즈(57)가 바니에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지난달 1일 파리 근교 낭테르 법원에서 첫 재판이 열렸으나, 베탕쿠르의 탈세 및 불법 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내용을 담은 베탕쿠르와 재산관리인 간의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가 새로운 증거로 제출되면서 재판이 무기한 연기됐다. 그러나 이 테이프에는 베탕쿠르가 탈세조사를 피해 스위스은행에 예치했던 8000만유로(약 1200억원)의 현금을 싱가포르 등으로 빼돌렸다는 얘기와 함께 집권여당의 유력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 등이 담겨 있어 정치권으로 확산이 예상돼 왔다.
특히 사르코지의 정치자금을 관리하며 정치자금 모금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던 뵈르트 장관은 탈세문제를 담당하는 예산장관 시절 자신의 부인이 베탕쿠르의 재산을 관리하는 회사의 임원으로 일해 베탕쿠르의 탈세를 방조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거센 사임압력에 직면해왔다. 그러나 뵈르트를 넘어 사르코지 대통령까지 직접 정치자금을 챙겼다는 구체적 주장들이 속속 제기되면서, 2012년 재선을 위해 개혁정책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위협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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