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선 집권당 후보 3차투표서 당선
파병·긴축 등 놓고 균열
불프, 최연소 대통령 당선 “심각한 타격”(<빌트>), “굴욕”(<차이트>), “첫 불신임”(<한델스블라트>), “대실패”(<슈피겔>)…. 지난 30일 치러진 독일 대선 결과에 대한 주요 언론들의 평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집권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과 자민당(FDP)의 보수 연정은 크리스티안 불프(51) 니더작센주 총리를 후보로 내세워 3차 투표까지 간 끝에 힘겹게 승리했다. 불프는 대통령 선출 기구인 연방총회의 3차 결선투표에서 과반을 겨우 2표 넘긴 625표를 얻어, 494표를 얻은 사민당(SPD)-녹색당의 요아힘 가우크(70)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집권 2기 메르켈 연정에 대한 사실상의 중간평가 성격을 띤 이번 대선은 객관적 조건으로만 보면 집권연정이 무난한 승리를 거뒀어야 했다. 하원의원과 동수의 16개 주의회 대표 1244명으로 구성되는 연방총회에서, 집권 연정은 과반(623표)을 훨씬 넘긴 644명의 대의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정 안에서조차 대거 이탈표가 쏟아지면서 말 그대로 상처뿐인 영광, 퇴락을 확인하는 승리를 거두는 데 만족해야 했다. 불프 후보는 1, 2차 투표에서 각각 600표, 615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 득표에 실패했고, 줄곧 3위를 차지했던 좌파당의 루크 요힘젠(74) 후보가 사퇴한 3차 투표에서야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다. 독일 일간 <타게스 슈피겔>은 나치가 대규모 내부 숙청을 단행한 1934년 6월30일을 뜻하는 ‘긴 칼날의 밤’에 빗대어 이날을 ‘긴 칼날의 낮’이라고 표현했다. 메르켈 총리로선 실제로 이날 하루 동안 정치인생의 미래가 걸린 칼날 위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메르켈 연정은 일단 ‘정치적 사망’은 면했지만 지도력에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됐다. 연정 내부의 균열 조짐이 현실화하면서, 야당이 요구해온 조기총선론도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10월 집권 2기를 시작한 메르켈 연정은 출범 직후부터 세금감면,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 등으로 불협화음을 빚었고, 최근에는 긴축 계획을 둘러싼 논란으로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 시사주간 <슈피겔>은 “불프 후보에 투표하지 않은 대의원들은 누구나 현 집권연정의 종식에 표를 던졌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독일 최대 대중지 <빌트>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8%가 “불프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면 메르켈 총리가 사퇴해야 한다”고 답해, “총리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30%)을 압도했다. 이번에 독일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된 불프 당선자는 16살 때인 1975년 기민당에 입당한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다. 1986년 고향인 오스나브뤼크 시의원에 당선돼 정치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003년 2전3기 끝에 니더작센주 총리에 올라 연임에 성공했다. 본인 스스로 “나는 알파형 남성은 아니다”라고 할 만큼 저돌적 리더십은 없지만, 굳은 심지와 세련된 매너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온건 보수주의자로서 정치권과 국민의 신망이 높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불프, 최연소 대통령 당선 “심각한 타격”(<빌트>), “굴욕”(<차이트>), “첫 불신임”(<한델스블라트>), “대실패”(<슈피겔>)…. 지난 30일 치러진 독일 대선 결과에 대한 주요 언론들의 평가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집권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과 자민당(FDP)의 보수 연정은 크리스티안 불프(51) 니더작센주 총리를 후보로 내세워 3차 투표까지 간 끝에 힘겹게 승리했다. 불프는 대통령 선출 기구인 연방총회의 3차 결선투표에서 과반을 겨우 2표 넘긴 625표를 얻어, 494표를 얻은 사민당(SPD)-녹색당의 요아힘 가우크(70)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집권 2기 메르켈 연정에 대한 사실상의 중간평가 성격을 띤 이번 대선은 객관적 조건으로만 보면 집권연정이 무난한 승리를 거뒀어야 했다. 하원의원과 동수의 16개 주의회 대표 1244명으로 구성되는 연방총회에서, 집권 연정은 과반(623표)을 훨씬 넘긴 644명의 대의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정 안에서조차 대거 이탈표가 쏟아지면서 말 그대로 상처뿐인 영광, 퇴락을 확인하는 승리를 거두는 데 만족해야 했다. 불프 후보는 1, 2차 투표에서 각각 600표, 615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 득표에 실패했고, 줄곧 3위를 차지했던 좌파당의 루크 요힘젠(74) 후보가 사퇴한 3차 투표에서야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다. 독일 일간 <타게스 슈피겔>은 나치가 대규모 내부 숙청을 단행한 1934년 6월30일을 뜻하는 ‘긴 칼날의 밤’에 빗대어 이날을 ‘긴 칼날의 낮’이라고 표현했다. 메르켈 총리로선 실제로 이날 하루 동안 정치인생의 미래가 걸린 칼날 위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메르켈 연정은 일단 ‘정치적 사망’은 면했지만 지도력에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됐다. 연정 내부의 균열 조짐이 현실화하면서, 야당이 요구해온 조기총선론도 힘을 얻고 있다. 지난해 10월 집권 2기를 시작한 메르켈 연정은 출범 직후부터 세금감면,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 등으로 불협화음을 빚었고, 최근에는 긴축 계획을 둘러싼 논란으로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 시사주간 <슈피겔>은 “불프 후보에 투표하지 않은 대의원들은 누구나 현 집권연정의 종식에 표를 던졌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독일 최대 대중지 <빌트>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8%가 “불프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면 메르켈 총리가 사퇴해야 한다”고 답해, “총리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30%)을 압도했다. 이번에 독일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된 불프 당선자는 16살 때인 1975년 기민당에 입당한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다. 1986년 고향인 오스나브뤼크 시의원에 당선돼 정치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003년 2전3기 끝에 니더작센주 총리에 올라 연임에 성공했다. 본인 스스로 “나는 알파형 남성은 아니다”라고 할 만큼 저돌적 리더십은 없지만, 굳은 심지와 세련된 매너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온건 보수주의자로서 정치권과 국민의 신망이 높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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