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대화뒤 “끔찍해”
총선 앞 수세몰린 노동당
말실수 겹쳐 끝모를 추락
총선 앞 수세몰린 노동당
말실수 겹쳐 끝모를 추락
유권자 비하 발언이 전파를 타고… 다음달 6일 총선을 앞두고 수세에 몰린 고든 브라운(59) 영국 총리가 28일 최악의 자책골을 터뜨렸다. 브라운 총리는 이날 잉글랜드 북부 로치데일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중 여성 유권자인 질리언 더피(65)를 ‘편견 덩어리’로 비하하는 말실수를 저질렀다. 평생 노동당 지지자였다는 더피는 브라운 총리에게 이민자 정책과 재정적자 감축방안을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브라운 총리는 일일히 답변을 한 뒤 “만나서 반가웠다”고 작별인사를 남기고 총리 전용차에 탄 뒤, 차 안에서는 전혀 뜻밖의 말을 읊조렸다. “끔찍했어. 내 앞에 저런 여자를 세우지 말았어야 했어. 웃기는 일이야. 그는 지독히 편협한 여자야.” 그러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뒷담화’는 셔츠에 꽂혀 있던 <스카이 뉴스>의 무선 핀마이크를 통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대형 사고였다. 브라운 총리는 곧바로 <비비시>(BBC) 라디오에 출연해 공개사과한 뒤, 이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다시 질리언 더피의 집을 찾아가 “실수를 저질렀다. 나는 참회하는 죄인”이라며 직접 사과했다. 노동당 의원들에게도 물의를 빚은 데 유감을 표시하는 전자우편을 보냈다. 이 사건은 다음날 거의 모든 영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기자들에게 브라운 총리를 “멋진 사람”이라고 했던 더피는 ‘험담’이 알려진 뒤 “매우 속상하다”며 (이번 총선때) 노동당에 찍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동당은 당혹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해리어트 하먼 노동당 부당수는 “총리가 몹시 낙담하고 있으며,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고 말했다. 경쟁 야당들은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보수당은 “사건 자체가 사태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논평만 내놨고, 자유민주당은 “브라운 총리가 사과하는 건 당연했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브라운 총리가 실언으로 날려버린 표는 1표보다 훨씬 많을 전망이다. <비비시>는 “이날 소동이 29일 마지막 텔레비전에 암운을 드리웠다”고 전했다. <더 타임스>도 “브라운의 실수가 노동당의 선거운동을 위기에 빠뜨렸다”고 보도했다. 내기에 능한 마권업자들은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할 확률을 30대1에서 46대1로 더욱 낮춰잡았다.
1951년 스코틀랜드 출신인 브라운 총리는 16살때인 1967년 에딘버러 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았으며, 이듬해 프랑스 전역을 휩쓴 ‘68혁명’의 기류에서 좌파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3년 총선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1997년 총선에서 18년만에 집권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내각에 재무장관으로 입각했으며, 2007년 5월 블레어 총리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당수직과 총리직에 선출됐다. 그는 영국 내각 서열 2위인 재무장관으로 10년간 재임한 최장수 기록을 갖고 있으며, 집권 이전인 1992년~97년에도 예비내각의 재무장관을 지냈을만큼 실력을 인정받는 재무통이다. 그러나 노동당 정권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 동참과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인기가 시들해진데다, 브라운 총리 자신도 ‘딱딱하고 건조하다’는 개인 이미지까지 더해지며 수세에 몰렸다. 1997년 역대 최다의석으로 재집권했던 노동당은 지난 15일 1차 티브이 토론 이후 잇따른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보수당과 자민당에 이어 부동의 3위에 머물고 있다. 브라운 총리는 29일 경제문제를 주제로 한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회에 정치적 운명을 걸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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