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주요국 무슬림 인구 현황
무슬림 인구 급증세…
유럽의 아랍화 위기감
유럽의 아랍화 위기감
이슬람에 대한 유럽의 뿌리 깊은 경계심이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혐오증)을 넘어 ‘유라비아’(유럽의 아랍화) 공포로 커지는 것인가?
최근 스위스에선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트(첨탑) 건축을 금지하는 국민투표가 예상을 뒤집고 57.5%의 지지로 통과돼 충격을 주었다. 투표를 제안한 우파 스위스국민당이 만든 포스터에는 미사일로 묘사된 첨탑들을 배경으로 온 몸을 부르카로 감춘 이슬람교도(무슬림) 여인이 서있다. 그러나 유럽인들이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무슬림 여인이 부르카 안에 감춘 ‘자살폭탄’이 아니라 아기, 즉 ‘인구폭탄’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저명한 중동학자인 마크 레빈은 3일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 인터넷판 기고에서 “8세기 이래 근 1000년 동안 유럽인은 이슬람과의 투쟁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해왔다”며 “무슬림 신생아들이 서구, 근대, 기독교 세속주의인 유럽의 근본적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원주민들인 백인 기독교도의 출산률이 매우 낮은 반면, 무슬림들은 출산률이 높은데다 유럽으로의 유입도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은 전후복구를 위한 대규모 노동이주 수용책을 펼쳤다. 2008년말 현재 유럽의 무슬림 인구는 5146만명으로, 유럽 전체인구의 7%에 이른다. 2015년에는 지금의 2배로 늘어나고, 2050년에는 유럽 인구의 20%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마크 레빈 교수는 인구통계학적 추세를 인용해 “유럽에 정착한 무슬림 여성들은 언어를 익히고, 교육을 받고, 취업하면서 유럽화 또는 세계화하므로 실제 출산률은 무슬림 세계 전반적인 추세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감소세”라고 밝혔다.
유럽의 이슬람 경계령에는 정치, 경제적 배경이 깔려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유럽에선 무슬림 인구의 증가가 이민정책에서부터 문화 정체성과 안보 문제에 이르기까지 주요정책의 초점이 되어 왔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취업난은 외국인 노동자를 넘어 외국인 전반에 대한 배타심을 키우고 있다. 유럽의 우파 정치세력은 이슬람 위협을 과장하고 무슬림을 타자화함으로써 정치적 반사이득을 노린다.
스위스 국민투표는 그 한 사례일 뿐이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미나레트 금지법이 통과된 데 이어, 우파 정당들을 중심으로 아예 헌법에 금지 조항을 넣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영국에선 지난 9월 극우단체들이 이슬람 사원에서 반이슬람 시위를 벌여 무슬림들과 충돌사태를 빚었다. 프랑스에선 현재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 착용 금지안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스위스 태생의 이슬람학자인 타리크 라마단 제네바대학 교수는 2일 프랑스 의회 청문회에서 “부르카 금지 논란은 확대될 필요가 없는 것”이라며 “진짜 문제는 아랍풍의 이름을 갖거나 무슬림이 되면 일자리나 아파트를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유럽 무슬림의 증가가 곧 유럽의 이슬람화, 또는 유럽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란 가정도 논란의 여지가 크다. 미국 외교협회(CFR)는 지난 1일 ‘유럽: 이슬람 통합하기’라는 보고서에서, 유럽의 아랍계 무슬림들이 다른 민족이나 종교보다 상대적으로 더 빈곤과 차별 속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무슬림들이 언어장벽과 상이한 문화규범 등의 이유로 스스로 폐쇄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며, 높은 범죄율과 사회복지 의존성도 무슬림 사회에 대한 유럽인들의 문제의식에 일조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유럽의 ‘이슬람 혐오증’을 20세기 초반 유럽을 휩쓴 반유대주의에 빗대는 시각도 있다. 유럽 이슬람 사회가 또 하나의 ‘게토’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그러나 유럽 내 유대인들도 비이성적인 반무슬림 정서에 우려를 표시한다. 프랑스 유대인 사회의 최고위 랍비인 길레스 베르네임은 3일치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스위스 뿐 아니라 모든 유럽인이 이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꾸도록 지금 곧 행동해야 하며, 이는 모든 종교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라며 “그러기 위해선 대화와 열린 마음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