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임시정부 총리인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사회민주연맹 대표가 25일 총선 투표가 끝난 뒤 당원들과 함께 승리를 축하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레이캬비크/AFP 연합
아이슬란드 총선, 좌파연대 과반득표 집권
자유시장 천국서 구제금융국 전락이 원인
자유시장 천국서 구제금융국 전락이 원인
신자유주의를 맹신했다가 금융위기의 첫 희생자가 된 아이슬란드에서 25일 총선이 치러져, 경제위기 심판론을 내세운 좌파 임시정부가 압승을 거뒀다.
개표율 90%를 넘어선 26일 현재 요한나 시구르다르도티르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연맹이 30.3%, 좌파녹색운동이 21.7%를 얻어, 두 정당이 구성한 임시정부가 과반을 득표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전했다. 18년간 집권하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보수 성향 독립당은 23%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전체 의석 63석 가운데 사민당 22석, 좌파녹색운동 13석 등 좌파 연정이 최소 35석을 차지하는 반면, 독립당은 15석 안팎을 얻는 데 그칠 전망이다. 경제위기가 아이슬란드 사상 최초의 좌파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다. 시귀르다르도티르 총리는 “이번 선거는 아이슬란드 사상 처음으로 좌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된 역사적 선거”라고 선언했다.
선거의 핵심은 경제위기 심판론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총선을 “빛과 어둠의 설화”에 비유했다. “선진국 중 가장 심각하게 악덕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손에 고통받고 있고, 금융위기의 폐허에서 헤쳐나오려 애쓰는 강소국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1991년 이후 독립당 집권 18년은 시한폭탄 같은 거품을 키워온 신자유주의 경제 성장 기간과 일치했고, 유권자들은 심판의 표를 던졌다.
인구 31만명에 불과한 아이슬란드는 지난해까지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달러에 이르는 부국이었다. 2000년대 초 금융 부문 민영화에 힘입어 은행들은 막대한 외환차입을 통한 대출로 이윤을 남겼고, 소비자와 기업들은 외채로 부를 누렸다. 그러나 지난해 말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쓸자, 아이슬란드는 한순간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로 전락했다.
좌파의 승리로 아이슬란드의 국내외 정책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깔을 띨 것으로 보인다. 경제위기 극복과 유럽연합(EU) 가입이 최대 현안이다. 시구르다르도티르 총리는 25일 “우리가 당장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하면 4년 안에 유로화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정 파트너인 좌파녹색운동은 가입에 반대하고 있지만, 시구르다르도티르 총리는 유럽연합 가입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44%나 폭락한 크로나화 가치, 공식통계로도 10%대인 실업률, 15%를 웃도는 인플레 등 망가진 경제를 재건하는 것은 녹록치 않은 과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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