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헝가리 이어 체코 총리도 퇴진
경제위기가 동유럽 정권들을 도미노처럼 무너뜨리고 있다.
유럽연합(EU) 순회 의장국인 체코 정부가 24일 의회의 불신임으로 붕괴됐다고 <파이낸셜 타임스> 등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체코 하원은 이날 미렉 토폴라넥 총리 불신임안을 101대 96으로 가결했다. 체코 헌법은 불신임안이 가결되면 정부가 퇴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도 우파 성향의 토폴라넥 총리는 2007년 1월 꾸려진 3개 정당의 소수 연립정부를 이끌면서 4차례나 불신임 표결을 넘겨왔으나, 경제위기 대응책에 대한 책임 추궁은 피해가지 못했다.
오는 6월에 만료되는 유럽연합 의장국 임기를 석 달 남겨둔 체코 정부가 붕괴함에 따라 다음달 주요·신흥 20개국(G20) 정상회담과 역내 통합 강화를 위한 리스본조약 등 주요 일정을 앞둔 유럽연합의 정책조율 기능도 흔들릴 공산이 크다.
토폴라넥 총리는 새 정부 구성 때까지 과도내각을 이끌 전망이다. 지지율 1위인 사회민주당은 올 가을 조기총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체코는 헝가리·라트비아·아이슬란드에 이어 경제위기 여파로 정권이 불명예 퇴진한 네번째 유럽 국가가 됐다. 지난 1월에는 아이슬란드 연립정부가 무너지면서 ‘도미노 정권 붕괴’의 신호탄을 쏴올렸다. 경제위기로 인한 정권 붕괴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경제위기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요구가 확산되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의 경우 강도 높은 긴축재정 등의 요구조건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가리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보스니아, 그리스 등도 경제위기로 인한 정권교체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꼽히고 있다.
한편, 토폴라넥 총리는 이날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 출석해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꼴”이라고 맹비난했다. 유럽연합은 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더 확대하라고 한 데 대한 반발해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국내에서 사실상 힘을 잃은 토폴라넥 총리가 유럽연합 순회 의장국 대표로서 활력을 되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경발언을 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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