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구제금융 보도’ 해프닝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이를 줄이지 않으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공공분야의 인력 감축 주문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브라이언 카원 아일랜드 총리가 지난주 직종별 노조와의 간담회에서 현재의 경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아르티이>(RTE) 방송이 14일 보도했다. 아일랜드의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을 내비친 이 보도에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 전체가 들썩였고,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전날에 비해 1센트 떨어지기도 했다.
일본을 방문 중이던 카원 총리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부랴부랴 불끄기에 나섰고, 국제통화기금까지 “(아일랜드에) 구제금융이 필요하다고 여길 이유가 없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보도의 진원지였던 댄 머피 공공서비스관리직노조(PSEU) 사무총장이 나서 “정부가 제시한 수치를 본 뒤 내 스스로 결론을 내렸을 뿐, 정부가 국제통화기금을 언급한 적은 없다”고 밝힌 뒤에야 사태는 잠잠해졌다.
해프닝으로 끝난 이 사건은 고도성장을 이뤄내며 ‘아일랜드 모델’로 주목 받았던 아일랜드가 처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적극적 대외개방과 외자유치를 통해 10년 만에 ‘서유럽의 환자’에서 ‘켈틱 타이거’로 변신한 아일랜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세계 금융위기에 연타를 맞았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유로존 국가로는 처음으로 공식 경기후퇴(리세션)에 진입했고, 지난해 조세 징수율도 전년보다 14%나 떨어졌다. 미국의 델컴퓨터가 지난주 공장을 폴란드로 이전하면서 1900명이 한꺼번에 거리로 나앉는 등, 외국인 투자 이탈에 따른 일자리 감소도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9만3500건에 달해 15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말까지 실업률은 10%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지난 9일 아일랜드의 재정수지 악화에 따라 국가신용등급(현행 AAA)을 하향조정할 수 있다고 밝혀, 자금 조달비용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