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 쿤데라(79)
25년만에 공개 발언…‘1950년 간첩 밀고’ 보도 부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체코 민주화 시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체코 출신 작가 밀라 쿤데라(79·사진)가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언론과 접촉했다.
쿤데라는 13일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체코 주간지 <레스펙트>가 보도한 ‘밀고’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최근 이 잡지는 쿤데라가 1950년 일어났던 ‘미로슬라프 드보르자체크 간첩사건’의 밀고자로, 그의 제보에 힘입어 체코 공산정부가 체코 출신 미국 간첩인 드보르자체크를 검거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비행사 출신으로 공산 체코를 탈출했다가 첩보임무를 받고 프라하에 파견됐던 드보르자체크는 체포 뒤 14년 징역을 살았다.
공산정권의 ‘부역자’로 지목된 쿤데라는 성명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금도 전혀 알지 못하며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일 때문에 모함을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문제의 기사가 자신에 대한 “살인 시도”라며 “드보르자체크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쿤데라는 젊은 시절 체코 공산당 집권 뒤 들어선 새로운 질서를 찬양하는 시와 노래를 지을 정도로 열성적인 지지자였다. 그러나 자유민주화운동이 일어난 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당에 대한 비판을 주도하면서 탈당·추방당했다. 75년부터 쿤데라는 프랑스에 망명해 살고 있지만, 지난 25년 동안 언론 접촉은커녕 사실상 ‘익명’ 상태로 숨어 지내며 공적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89년 체코 공산정권이 무너지면서 ‘금서’였던 쿤데라의 책은 체코 독자들도 볼 수 있게 됐다. <비비시>(BBC)는 이번 ‘쿤데라 부역 논란’이 체코의 전체주의 시대가 결코 먼 옛날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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