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버킹검 궁전 앞의 근위병 교대식. 〈한겨레〉 자료사진
영국의 명물, 버킹엄 궁 근위병의 길다란 검은 모자를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영국의 동물보호단체 ‘동물을 윤리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페타·PETA)은 2일 국방부 고위관리들과 만나 이 모자를 바꾸는 회의를 가질 예정이라고 <가디언>이 전했다.
길이 45.7㎝의 근위병 털모자는 캐나다 흑곰의 모피로 만든다. 모자 1개를 만드는 데는 곰 1마리의 가죽이 필요하다. 페타의 유럽 지부장 로비 르블랑은 궁 앞의 관광객들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관광객은 이 모자가 가짜 모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짜 모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질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국에서 모피용 동물 사육은 금지되어 있지만, 정부는 우리의 세금을 (모자를 만드는 외국인들에게) 지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국방부는 매년 50~100개의 새 모자를 구입하며 최근 5년 동안 32만파운드(약 6억4천만원)를 지불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영국 국방부는 다른 모자로 바꾸자는 의견에 대해 떨떠름한 입장이다. 영국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부는 곰가죽을 대신해 어떤 기후에도 적절한 성능을 발휘하는 인조 물질로 모자를 만드는데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그런 대안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원래 프랑스 근위 보병이 더 크고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 썼던 이 모자는 1815년 워털루 전투 이후 영국 근위대 승리의 상징이 되어 200년 가까이 의전 예식에서 쓰이고 있다.
르블랑 지부장은 2일 회의에 몇몇 유명 디자이너들과 함께 새로운 모자 견본을 가지고 참석할 예정이다. 그는 새 모자도 예전 근위병 모자처럼 왕실근위대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날 회의에는 국방부 의상담당 여남작도 참석할 예정이다. 르블랑은 “여왕의 근위대가 머리마다 곰 한마리씩을 얹고 다니는 것은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새 모자에 기대감을 비쳤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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