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베데프 대통령 의회 결의안에 서명
미국, 체니 부통령·군함 파견 ‘맞불 놓기’
미국, 체니 부통령·군함 파견 ‘맞불 놓기’
서방 세계가 강한 어조로 경고해왔던 그루지야 내 두 자치지역의 ‘독립 승인’을 러시아가 강행하면서, 러시아와 서방 세계와의 갈등이 한층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 맞서 그루지야 사태 이후 최고위급 외교사절인 딕 체니 부통령을 그루지야에 보내고, 러시아군 통제 지역에 군함을 파견하겠다며 ‘맞불 놓기’에 나섰다.
러시아 의회가 25일 그루지야의 자치지역인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독립국으로 승인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데 이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6일 이 결의안에 서명했다. 러시아가 그루지야와 서방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나라의 ‘독립’을 공식으로 인정하는 법적 절차를 끝마친 셈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흑해 연안 소치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가 끝난 뒤 한 텔레비전 연설에서 “이번 결정은 두 자치공화국 주민들의 뜻을 존중한 것이며, 유엔 헌장과 유럽 안보와 협력에 관한 헬싱키 조약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서방은 일제히 러시아를 비난하고 나섰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극히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며 “미국은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국제적으로 인정된 그루지야 영토로 계속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러시아가 국제협약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종전협정을 중재한 프랑스도 “그루지야의 영토 통합을 존중한다”고 거듭 밝혔다.
크레믈(크렘린)은 곧바로 두 자치지역과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협상에 착수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남오세티야 자치주와 압하지야는 이날 러시아의 독립 승인을 “역사적인 일”이라며 환영했다. 두 자치지역을 둘러싼 러시아-서방-그루지야-자치지역 간 복잡한 이해와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예고하고 있다.
러시아가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독립국으로 최종 승인한 것은 그루지야에 걸린 러시아의 이해를 서방에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다. 푸틴 총리(전 대통령)가 이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관계 단절은 물론 세계무역기구(WTO) 일부 협정에 대한 참여도 보류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러시아의 강경한 의지의 과시로 볼 수 있다.
러시아는 또 우크라이나의 세바스토폴항으로 돌아갔던 해군 순양함 모스크바호를 이틀 만인 이날 흑해에 재진입시켰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아나톨리 노고비친 러시아군 부참모장이 “흑해에 미 군함 2척을 포함해 무려 9척의 나토군 전함이 들어와 있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러시아 순양함의 흑해 재진입 조처가 취해진 것이다. 앞서 미국은 24일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해군 소속 구축함 맥폴호를 그루지야 바투미항에 보냈다.
러시아의 강수에 미국도 강수로 맞서고 있다. 그루지야 주재 미국 대사관은 이날 그루지야의 요청에 따른 행동이라며, 구호 물품을 실은 미 군함 2척이 포티항에 정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그루지야 침공 이후 압하지야 자치공화국 내 포티항을 통제하고 있어, 자칫 러시아군과 미군의 ‘충돌’마저 우려되고 있다.
딕 체니 부통령은 다음달 2~10일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아제르바이잔 방문에 나선다고 <뉴욕 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동맹’인 그루지야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는 한편, 러시아에 맞서 옛소련 국가들과의 결속을 다지려는 것이다. 이정애 류이근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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