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방 노선 걷는 옛 소련국가들
‘친서방’ 정상, 그루지야 방문…‘다음엔 우리 칠지도’ 공포
“드디어 러시아가 본색을 드러냈다.”
12일 그루지야를 방문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거침없이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 전쟁을 계기로, ‘친서방 노선’을 걸어온 러시아 국경 주변 국가들이 공포감에 휩싸였다. 이런 긴장감은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발트3국)와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5개국 정상의 12일 그루지야 지지 방문으로 확연히 드러났다. 이들은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열린 러시아에 대한 항의집회에 참석해 ‘굳건한 연대’를 약속했다. 5개국을 대표해 연단에 선 카친스키는 “우리의 방문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희생당한 그루지야에 대한 5개국의 연대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5개국은 지난 9일에는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반대한다’며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지원을 요청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13일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2일 “러시아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시민권자를 보호한다는 전례를 마련한 만큼, 러시아 민족이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크림 지방, 북부 카자흐스탄 등에도 유사한 전술을 사용할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폴란드 국제관계협회의 바르토즈 치치오키는 “5개국은 옛소련이 소수민족을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영토를 갈라놓은 과거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며 “러시아로부터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면 이들의 독립은 지속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포감에 휩싸인 옛소련 영향권 국가들은 최근 몇 년 새 두드러지게 러시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나라들이다. 폴란드와 발트3국은 모두 나토와 유럽연합에 가입해 있고, 우크라이나는 그루지야처럼 2004년 ‘오렌지 혁명’을 통해 친서방 정권이 들어섰다. 폴란드의 경우,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기지 설치 계획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찬성해 왔다.
그루지야 전쟁은 향후 이들 국가들의 친서방 노선에 일정 정도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미 러시아는 최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러시아인이 박해받는다는 주장이 나돌자, 자국의 원유 수출 수송로에서 라트비아를 따돌려 실질적인 타격을 준 바 있다. 유럽연합과 나토에 이미 가입해 있는 폴란드나 발트3국과 달리, 서방 국가들의 보호망에 편입돼 있지 않은 우크라이나가 그루지야에 이은 두번째 목표물이 될 것이란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황보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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