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내전 전범 용의자 라도반 카라지치의 지지자들이 29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강경 민족주의 성향의 세르비아급진당이 주도한 이날 시위는 1만5천여명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참가했으며 “세르비아의 자유, 라도반의 자유” 등 구호를 외쳤다. 카라지치는 3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로 이송됐다. 베오그라드/AP 연합
국민 30% “카라지치는 영웅”
“카라지치는 90년대 끔찍한 전쟁에서 세르비아를 수호한 영웅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최악의 인종청소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라도반 카라지치(63)가 30일 새벽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로 이송됐다. 최소 1만5000명에 이르는 세르비아 우익세력들은 이송 전날부터 수도 벨그라드 거리에 모여 전범재판소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인종청소 등 반인륜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카라지치에 대한 변함없이 열렬한 지지는 세르비아가 아직 전쟁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이 29일 보도했다.
지난 21일 13년에 가까운 도피생활을 마치고 세르비아 경찰에 붙잡힌 카라지치는 8000명에 이르는 이슬람계 젊은이가 숨진 스레브레니차 학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은 이날 최근 여론조사 결과 세르비아 국민의 54%는 카라지치의 이송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전체 응답자의 30% 가량은 카라지치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를 전범이라고 보는 국민은 17%에 불과했다. 우익세력들은 헤이그 전범재판소가 균형을 잃고 세르비아인들을 붙잡아 처벌하는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전범재판소로 넘겨진 용의자들 가운데 세르비아인은 45명, 크로아티아인은 12명, 무슬림은 4명이다.
베오그라드 인권법센터의 나타샤 칸디치는 세르비아 사람들이 전쟁범죄에 관한 ‘기억상실증’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레브레니차 학살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95년 방송 프로그램에서였고, 학교 교과서에서도 학살에 대한 내용은 각색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현 정부 역시 과거 청산 노력보다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한 방책으로 카라지치 문제를 다뤄온 경향이 크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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