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도반 카라지치 관련 주요 일지
13년만에…유고 전범재판소로 이송 예정
“세르비아, EU가입 포석”…민족주의자 반발
“세르비아, EU가입 포석”…민족주의자 반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이른바 ‘인종청소’라 불리는 대량학살 주범으로 국제사회의 수배를 받아온 라도반 카라지치(63)가 세르비아 정부 보안요원들에 의해 전격 체포됐다. 카라지치의 체포 소식에,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보스니아 내전을 종결하는 데이턴 협정을 이끌었던 리차드 홀부룩 전 미국대사는 “유럽의 오사마 빈 라덴이 체포된 역사적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21일 밤 성명을 내어 “카라지치가 베오그라드 인근에서 세르비아 보안요원들에게 체포됐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22일 보도했다. 그러나 카라지치의 변호사인 스베토자르 부야치치는 <로이터> 통신에 “지난 18일 밤 베오그라드 외곽의 버스에서 체포돼 공식 발표 전까지 구금돼 있었다”고 밝혀, 자세한 체포 과정은 의혹으로 남아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의 세르주 브라메르츠 수석검사는 “1992년과 1995년 사이에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 당시 2차대전 이래 가장 흉악한 학살을 주도한 카라지치가 유고전범재판소로 이송되는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집단학살과 전쟁법규 위반, 사유재산 침탈 등 16개 항목의 범죄 혐의로 기소돼 있는 카라지치는 세르비아 법원으로부터 신원확인 등의 절차를 거친 뒤, 유고전범재판소로 이송된다. 유고전범재판소는 2004년 카라지치 휘하에 있던 세르비아계 장성에게 집단학살죄를 적용해 징역 46년형을 선고한 바 있다.
카라지치는 1992년 보스니아가 유고연방 해체과정에서 독립을 선언하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내전을 주도했다. 특히, 지난 95년 유엔이 안전지대로 선포한 지역인 스레브레니차에서 8천명에 가까운 이슬람계 주민 학살을 지휘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사건은 “2차대전 이후, 유럽 최악의 학살”로 불린다.
13년 동안 도피행각을 벌여 온 카라지치의 체포는 유럽연합 가입을 바라는 세르비아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영국 <비비시>(BBC)는 22일 “지난달 출범한 친유럽 성향의 세르비아 새 정부가 카라지치를 체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왔다”며 “새 정부가 가입을 희망하는 유럽연합이 카라지치를 전범재판소로 넘기도록 세르비아에 상당한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과거 세르비아 정부는 ‘카라지치를 안 잡는가, 못 잡는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카라지치의 도피를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유럽연합은 이날 “세르비아가 발칸 지역의 평화에 기여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세르비아의 유럽연합 가입에 중요한 발걸음을 뗐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카라지치를 ‘전쟁 영웅’으로 추앙하는 민족주의 진영의 지지자들은 그가 체포돼 있는 세르비아 법원 앞에 몰려드는 등 반발하고 있어, 타디치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카라지치는 누구
무슬림 수만명 학살 혐의…세르비아계에선 전쟁영웅
21일 체포된 라도반 카라지치(사진]·63)는 보스니아 내전 전범 용의자로 ‘1급 지명수배자’였다. 수만명을 학살했다는 혐의를 받는 그의 삶엔 줄곧 강한 우익 민족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정치지도자인 카라지치는 1945년 몬테네그로 지방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민족주의 성향의 무장세력 ‘체트니크’의 일원으로, 카라지치의 유년기 동안 대부분 감옥에 갇혀 있어 어린시절을 함께 하지 못했다.
사라예보 의대를 졸업한 카라지치는 정신과 의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시를 쓰는 데 몰두하기도 한 그는 민족주의 성향의 세르비아 작가 도브리차 초시치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훗날 초시치는 카라지치의 정계 진출을 권유했다.
카라지치는 세르비아계 사이에선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그는 89년 민족주의 성향의 세르비아민주당(SDS) 창당에 참여해, 훗날 당수로 취임하면서 주도적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 세르비아계의 이익을 대변했다. 92년 초 보스니아 독립과 유고연방 해체 과정에서, 그는 별도의 입법·행정 조직을 꾸리며 연방 잔류를 추진한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움직임 한복판에 있었다. 카라지치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정부의 수반으로 취임해 군통수권을 쥐었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가 제기한 그의 혐의는 이때부터 95년 ‘스레브레니차 대학살’ 무렵까지의 반인도적 행위와 전쟁범죄 등이다.
전쟁이 끝나고 카라지치는 13년 동안 은밀한 도피생활을 지속해 왔다. 인근 몬테네그로를 비롯해 러시아, 체코 등으로 피신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사라예보 시내에 숨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고, 쉽사리 쫓지 못하는 북한에 잠입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나토와 서방 정보기관, 세르비아 경찰이 끝내 찾아내지 못하자, 할리우드는 <보스니아에서의 봄방학>이란 영화로 그의 도피생활과 수사당국의 무관심을 풍자하기도 했다. 카라지치는 96년 영국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재판소가 진정한 사법부라면 출두하겠지만, 순전히 세르비아인들을 비난하기 위한 정치단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카라지치와 더불어 보스니아 ‘인종청소’의 주범으로 지목된 라트코 믈라디치(66)와 고란 하지치(49)는 여전히 수배 중이다. 믈라디치는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군부를 지휘한 총사령관이었으며, 하지치는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계 지도자로 당시 세르비아 민병대의 활동을 지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카라지치는 누구
무슬림 수만명 학살 혐의…세르비아계에선 전쟁영웅
라도반 카라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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