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국민들이 24일(현지시각) 수도 베오그라드 시청 앞에서 지난 17일 실시된 총선 무효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오그라드/타스 연합뉴스
세르비아에서 총선이 치러진 지 일주일이 넘도록 정부의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24일(현지시각) 수천명이 총선과 지방 선거 무효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시위대 일부는 베오그라드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있는 시청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이들을 저지했다. 시위대는 알렉산드르 부치치 대통령이 선거를 강탈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일부는 “부치치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야당 연합체 ‘폭력에 반대하는 세르비아 연합’의 지도자 네보이사 젤레노비치는 선거를 강탈당했다며 특히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부정이 집중적으로 자행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의회와 대통령 관저가 있는) 시내 중심부에 경찰을 대규모로 투입했다”며 “우리는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야당 연합체 소속의 유력 정치인 마리니카 테피치는 선거 무효화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지난 17일 실시된 총선에서는 집권 여당인 ‘세르비아 진보당’(SNS)이 이끄는 연합세력이 48.01%로 1위를 차지하면서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폭력에 반대하는 세르비아 연합’은 24.36%를 득표해 2위에 머문 것으로 집계됐다.
이 나라에서는 지난 5월3일과 4일 베오그라드와 인근 지역에서 잇따라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해 18명이 숨지자,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대규모 항의 시위가 몇주째 이어졌다. 시위 정국이 진정되지 않자, 부치치 대통령은 2026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을 2년 5개월 앞당겨 실시함으로써 민심 잠재우기에 나섰다. 하지만, 부정 선거 논란이 벌어지면서 상황은 다시 나빠지고 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이 구성한 국제 선거 감시단은 이번 선거가 언론의 편향 보도와 부치치 대통령의 부당한 개입으로 여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진행됐으며 유권자 매수 등의 부정도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부치치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선거 부정 주장은 야당의 거짓 선동이라며 정부를 흔들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위대를 “폭도”로 지칭하기도 했다. 다만, “시위대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차분하면서도 부드럽게 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야당은 유럽연합(EU)에 편지를 보내 이번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말 것과 선거 부정 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세르비아는 2009년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해 2012년 후보국 지위를 얻었으나, 코소보와의 갈등, 친러시아 외교 정책, 민주주의 후퇴 논란 등 때문에 아직 정식으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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