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이주민을 가득 태운 배가 그리스 앞바다를 지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난민 유입이 크게 늘며 유럽 각국이 몸살을 앓는 가운데, 그리스가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겠다며 이주민 최대 30만명의 신분을 합법화하겠다고 밝혔다.
디미트리스 카이리디스 그리스 이민부 장관은 26일 국영 라디오에 이주민 정규화 프로그램을 통해 서류를 갖추지 못했거나 거주 허가가 만료된 이주민 30만명을 받아들일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농업, 건설, 관광 분야에서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번 조치는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주재한 국가안보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이고 향후 공식화 될 예정이다.
그리스로 9월 한 달 동안만 7천명에 달하는 이주민이 도착하면서 이들을 위한 시설의 수용 능력은 한계에 달했다. 그리스 정부는 이주민에 대한 가혹한 대우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카이리디스 장관은 “우리는 불법 이주민 유입에 새로운 인센티브를 만들고 싶은 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위협이기 때문이다”라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신고되지 않던 노동을 신고할 수 있도록 전환해 공공 수익을 늘리고 특정 분야에서 극심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스가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전향적 정책을 펴려는 이유는 노동력 부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예컨대, 와인 생산 업계는 인력 부족으로 애써 키운 포도를 수확하지 못하는 지경이다.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테살로니키의 지하철 건설과 크레타 섬의 신공항 건설 등 공공 사업 프로젝트가 인력 부족으로 미뤄지고 있다.
레페테리스 아브게나키스 농업부 장관은 이집트, 방글라데시 등을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 모집 계획이 관료주의 때문에 지연되는 경우가 잦다면서 이주민을 고용하는 것은 자국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는 그리스에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이 ‘회색 지대’에서 일하며 “불안정하고 사회, 건강, 재정 문제를 야기한다”라면서 이들 이주민의 자격을 합법화함으로써 “고용된 이들과 고용주에게 뭔가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도록 해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우파 정부도 비슷한 딜레마를 마주하고 있다고 짚었다. 불법 이주를 근절하겠다는 선거 공약을 달성하려고 노력하지만 동시에 사회 각 분야에서 고용주들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호소하고 있어서다.
이탈리아도 과거 그리스와 같은 방식으로 이주민의 지위를 합법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멜로니 총리는 집권 뒤 유럽연합(EU) 외 국가 시민들에게 내주는 노동 허가를 늘리는 데만 집중해왔다. 지난 7월 이탈리아 정부는 2025년까지 이러한 노동 허가를 42만5천건 발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지중해 등을 거쳐 자국으로 들어오는 이주민을 억제하기 위해서 이들을 구금할 새 시설을 짓고 약 5천유로의 보석금을 물리겠다고 선언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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