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최대 도시 스테파나케르트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의 폭격으로 아파트가 부서져 있다. AP 연합뉴스
3년 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 전면전의 원인이 됐던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또다시 무력충돌이 일어나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하루 만에 아르메니아계 자치군이 무장해제에 동의하며 수습되는 모습을 보였다.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19일 성명을 내어 자국 영토 내에 있지만 아르메니아계 주민이 대다수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테러리스트 제거 작전”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고 비비시(BBC)가 보도했다. 아르메니아계 언론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중심 도시 스테파나케르트에 공습경보가 울리고 포탄이 발사되고 있다고 전했다.
공격을 시작한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카라바흐 지역에서 광범한 도발을 막고 아르메니아군 병력을 무장해제하고 우리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이 지역에서 반테러 수단을 개시했다”며 “민간인과 민간인 시설은 공격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자치정부는 “아제르바이잔군이 무차별 공격을 벌여 민간인만 적어도 2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자치정부는 아제르바이잔군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하루 만에 군 병력의 무장해제에 동의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아제르바이잔 관계자는 휴전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에 재통합하기 위한 방안이 21일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영토 안에 있지만, 주민 대다수가 아르메니아계여서 옛 소련 시절에도 광범위한 자치를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1991년 12월 소련 붕괴와 함께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동시에 독립하며 지역 영유권을 놓고 두차례나 전면전을 벌였다. 1차 전쟁(1992~1994) 땐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을 제압해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뿐 아니라 주변 아제르바이잔 영토 20%를 점령했다. 이 과정에서 2만~3만명이 숨졌다.
이후에도 국지적 무력충돌을 끊임없이 벌여온 양쪽은 2020년 9월 말 아제르바이잔의 공격으로 2차 전쟁에 돌입했다. 6주간 이어진 전쟁에선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은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제외하고 아르메니아에 빼앗겼던 주변 영토를 탈환했다.
아제르바이잔의 이번 공격은 이날 오전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차를 타고 가던 아제르바이잔의 고속도로 사업 담당 직원 2명과 군인 4명 등이 잇따라 지뢰 폭발로 사망한 뒤 이뤄졌다. 이 사건을 명분 삼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제르바이잔군은 앞서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아르메니아를 잇는 유일한 통로인 ‘라친(라츤) 회랑’을 몇달간 봉쇄하며 긴장을 높여왔다. 이 봉쇄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주민 12만명이 식량·의료품 등 생필품 부족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이번 무력충돌과 관련해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오산에 의한 행동 그리고 갑작스럽고 모험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며 군사적 대응을 자제할 뜻을 비쳤다. 그러나 수도 예레반 거리에는 몇백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어,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계 주민을 돕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방위조약을 맺은 동맹국이지만,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조약의 적용 범위에서 빠져 있다. 아르메니아 외교부는 이번에도 러시아에 “아제르바이잔의 공격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분명한 조처를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이 묶인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은 낮다.
러시아는 휴전 중재자 자격으로 라친 회랑에 평화유지군 2천명을 파병해놓고 있다. 이들도 자신들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는 한 나서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성명을 내어 “양쪽이 즉각 유혈사태를 멈추고 적대 행위를 그만두고 정치적·외교적 해결책으로 돌아가길 촉구한다”고만 밝혔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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