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러시아 소치에서 회담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튀르키예 대통령 공보실 제공,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이 곡물 수출을 위한 자신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흑해 곡물협정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다시 밝혔다. ‘절친’으로 알려진 튀르키예 대통령이 설득했지만 소용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4일(현지시각) 러시아 소치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곡물 협정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 (서방과 한) 모든 협의 내용이 이행되면 즉시 실행할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두 정상은 3시간에 걸쳐 회담했지만 곡물협정 재개를 위한 돌파구 마련에는 실패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기대에 부응하는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물론 서방과 후속 논의를 통해 이 문제를 풀겠다는 의미다.
이날 회담에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협정 재개를 위한 새 제안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는 소식이 지난달 31일 전해졌다. 튀르키예 언론은 유엔의 제안에 러시아 농업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시스템에 재연결하고, 유럽에서 자산이 동결된 러시아 곡물 공급자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제안으로는 부족하다고 거절 의사를 밝힌 셈이다.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에 차질이 생기며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가시화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튀르키예와 유엔은 지난해 7월 두 핵심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중개해 우크라이나 곡물을 실은 배의 안전한 흑해 운항을 보장하는 곡물협정을 만들었다. 협정은 이후로 세 차례 갱신됐지만, 러시아가 자국산 농산물과 비료의 수출을 가로막는 서구의 제재가 여전하다며 지난 7월 추가 갱신을 거부했다. 러시아는 협정 재개를 위한 조건으로 러시아 농업은행의 스위프트 재연결, 파이프라인을 통한 암모니아 수출 재개, 농기계·부품 수입 재개, 러시아 선박·화물에 대한 보험 제한 해제, 러시아 곡물·비료 회사에 대한 제재 해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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