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배우자인 올레나 젤렌스카와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도착했다. AFP 연합뉴스
러시아의 침공 2년차에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나토에 있다”면서도 동맹 가입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동맹에 들어오기 위해 필요한 사전 절차를 면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 보장책을 논의하기 위한 ‘나토-우크라이나 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1일(현지시각) 오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31개 나토 회원국 및 스웨덴과의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동맹국들이 동의하고, 조건이 만족됐을 때”라는 단서를 달아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동맹 합류를 위한) 초청장을 발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나토 가입의 구체적인 시점과 일정표를 제시하진 않은 셈이다.
나토는 그 대신 동맹 가입을 위한 사전 절차인 ‘가입국 행동 계획’을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면제하기로 합의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회원국 가입 절차가 2단계에서 1단계 절차로 변경된다”고 말했다. 또 나토가 군사 장비와 훈련 등을 제공해 우크라이나군을 나토식으로 현대화하려는 계획 역시 예전보다 진일보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부 회원국은 이 논의 과정에서 전쟁이 끝나자마자 우크라이나에 동맹의 문을 열어주면, 러시아가 종전 협상에 나서기 더 어려워져 전쟁이 장기화된다는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자회견이 이뤄지기 직전 트위터를 통해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회원국 가입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을 발표하지 않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러시아가 테러를 계속할 동기가 생긴 셈”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기정사실로 만들지 않아 향후 종전·평화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에 이를 재론할 여지를 줬다는 지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1일 오후 빌뉴스에 도착해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안보를 제공하고, 우크라이나는 동맹을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며 자국의 합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의 가입 시점을 못박지 않은 데 대해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러지 않으면 회원국 가입 문제는 전혀 논의할 수 없다”고 했다. 최근 동맹국이 장거리 순항미사일에서부터 F-16 전투기를 제공하기 위한 훈련에 나선 사실 등을 언급했다. 프랑스는 영국처럼 순항미사일 ‘스칼프’(영국의 ‘스톰 섀도’와 같은 미사일)를 제공하기로 했고, 독일은 미사일 방공 시스템, 탱크, 장갑차 등이 포함된 7억7천만유로(1조원) 규모의 새 군사 원조 패키지를 발표했다. 영국도 챌린저2 전차에 탑재할 추가 탄약과 전투 차량 70대 등을 비롯한 5천만파운드 규모의 추가 지원을 한다. 나토 11개 회원국은 이날 우크라이나 조종사에게 F-16 전투기 훈련을 지원하는 내용의 양해각서에도 서명했다.
나토는 또 우크라이나가 동맹에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회의도 소집할 수 있도록 ‘나토-우크라이나 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위원회의 첫 모임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2일 열렸다.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군을 나토식으로 현대화하는 ‘다년간 지원 프로그램’ 등이 논의됐다. 이날 나토와 함께 주요 7개국(G7)도 ‘양자 협정’을 맺는 방식으로 장기적인 안보 조치를 제공하기로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일 이를 환영하면서도 “나토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안전 보장으로 봐야 한다. 우리가 (나토 가입) 초청을 받는다면 그것이 최선일 것”이라고 했다.
11일(현지시각) 오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도착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왼쪽 둘째)이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함께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나토가 마지막으로 관심을 쏟은 주제는 중국이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우리의 적(adversary)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 (중국과) 연계해야 한다”면서도 “중국이 점점 더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며 우리 안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공동선언에선 중국의 “야망과 강압적인 정책은 우리의 이익과 안보, 가치에 도전하고 있다”며 “우리는 상호 투명성 구축을 포함해 중국과의 건설적인 관여에 열려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확인했듯 중국과 디커플링(관계 단절)이 아닌 디리스킹(위험 완화)을 하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해선 엄혹한 시각을 유지했다. 공동선언에서 러시아를 유럽·대서양 지역의 평화·안정에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명시하며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모든 병력과 장비를 완전히, 무조건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다만 향후 관계는 러시아의 행동에 달려 있으며 “열린 소통 채널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했다. 나토는 지난해 정상회의 때 12년 만에 ‘전략 개념’을 개정하며 러시아는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 중국은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 정의한 바 있다.
러시아는 음울한 경고를 날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12일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러한 (나토와 G7 등의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움직임이 실수한 것이고 잠재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며 “중·장기, 심지어 단기적으로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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