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영국 축구선수이자 <비비시>(BBC) 방송의 유명 축구 해설가인 개리 리네커가 11일(현지시각) 자택을 나서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보트를 타고 자국으로 불법 입국하는 난민을 근절하겠다며 7일 발표한 ‘불법이민법’에 대한 국제법 위반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 공영방송의 유명 축구해설가가 이 법을 비판했다고 프로그램 하차 위기에 놓였다. 법안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표현의 자유’ 문제로 확대되며 일파만파 번져가는 모양새다.
10일 영국 공영 <비비시>(BBC) 방송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영국 정부의 불법이민법을 비판한 영국의 축구 레전드이자 유명 축구해설가인 개리 리네커(62)의 방송 출연을 중단시켰다. 리네커는 최근까지 기네스가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축구쇼인 ‘매치 오브 더 데이’를 진행해왔다. 처분의 이유는 그의 글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할 때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방송사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리네커는 영국 정부가 불법이민법을 발표한 앞선 7일 트위터에 이 법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이 법을 정당화하는 영국 정부의 설명을 “1930년대 (나치) 독일이 사용했던 언어”에 비유했다.
<비비시>가 리네커의 방송 출연을 중단하자 축구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 방송의 동료 스포츠 프로그램 진행자들도 ‘표현의 자유’ 억압에 반발하며 잇달아 하차 선언을 했다. 주말엔 리네커에게 연대의 뜻을 밝히자는 취지로 “나는 개리와 함께 한다. 비비시를 보이콧하자(#IamWtihGary, #BoycottBBC)”는 문구를 담은 해시태그 운동도 이어졌다. 리네커의 방송 복귀를 요구하는 시민 청원은 12일 현재 19만5천명을 넘어선 상태다. 1980년대 영국 국가대표로 활약한 리네커는 ‘그라운드의 신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국가대항전(A매치)에서 48골을 넣었다.
누리꾼들은 뉴스 진행자도 아닌 스포츠 해설자가 트위터에 개인 의견을 밝혔다고 직장에서 잘릴 위기에 놓인 데 대해 “영국이 완전히 미쳤다”, “중국이나 북한 같은 독재 정권과 나을 게 없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영국 노동당도 <비비시>의 결정에 대해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며 비판에 힘을 보탰다. 그렉 다이크 <비비시> 전 사장도 이례적으로 공개 성명을 내어 “<비비시>가 스스로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리시 수낵 총리는 ‘리네커 사태’를 촉발한 불법이민법을 재차 옹호하면서도 논란이 “적시에” 해결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팀 데이비 <비비시> 사장은 방송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은 것을 사과했다.
영국 정부는 앞서 작은 배를 타고 영-불 해협을 불법으로 넘는 망명 희망자를 막기 위한 ‘불법이민법’안을 공개했다. 이 법은 불법 난민을 신속하게 추방하는 것을 당국의 “의무”로 규정하며, 불법 입국자들은 난민 신청을 할 수 없고, 추방되면 영구적으로 재입국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해선 국제적인 망명 신청 권리와 ‘강제송환금지원칙’을 담은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중이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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